김희숙 동화작가 이번에 새로 출간한 동화 『가릉빈가』는 니체의 '아모르 파티', 즉 '내 운명은 내가 만들고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형상화한 책이라고 전하고 있다.

초등국어 교과서에 실린 『엄마는 파업 중』이라는 동화 작가로 잘 알려진 김희숙 작가를 화순저널 인터뷰석에 초대했다. 십여년 전 퇴임 후 화순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서태리에 거처를 마련해 이사를 와 살았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대안학교를 설립하게 되자 두 해밖에 못 살고 다시 광주로 이사를 나가야 해서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최근 천상의 소리를 낸다는 극락조 가릉빈가와 성덕대왕 신종를 버무려 빚은 동화 『가릉빈가』를 출간했다는 소식과 그의 동화작가 인생에 대한 이야기, 차후 화순 운주사를 모티브로 해서 동화를 쓰고 싶다는 바람 등을 듣고 여기에 옮긴다. <편집자 주>

---

▲ 자기 정체성 혼란을 잠재워준 동화작가의 길

초등 교사였을 적, 우리 반 아이들의 모둠을 대부분 제가 정해주는 편이었는데, 수학여행 등 특별한 날에 한두 번 정도는 친한 친구끼리 모둠을 정할 수 있게 해줬어요. 그때마다 어떤 모둠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가 생기는데, 그럴 때 “얘들아, 친구가 빠졌네.”하고 말하면 누군가가 그 아이를 데려가 같은 조가 돼줬어요.

그날도 모둠에 끼지 못한 아이를 바라보는데, ‘모둠에 끼지 못하는 저 아이는 학교가 얼마나 지루할까? 의무적으로 온 학교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거야.’라는 말을 들려줄, 교실이 아닌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 30대 중반이었던 94년경 봄, 촌지(寸志) 문제가 대서특필됐어요. 이로 인해 선생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오게 됐어요. 선생인 것이 부끄러워진 저는 뭔가 탈출할 계기가 필요했고, 직업을 바꿔보려고 속기사와 공인중개사 공부까지 했었어요. 그러다 바쁜 학기 말을 보내고 여름 방학이 돌아오니 열패감이 조금 사라지게 되더라고요.

옆에서 방황하는 제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동화를 써 보라고 권유했어요. 그동안 동화도 많이 읽었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초등교사인데다가 교실이 아닌 다른 공간이 절실했던 제게, 남편의 말은 글을 쓰게 만들어준 동기가 돼줬어요.

이후 동화를 쓰면서 이제껏 몰랐던 엄청난 재미를 알게 되었고, 차츰 자기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그렇게 교사와 작가를 병행하게 됐답니다.

작업실에서 집필 중인 김희숙 작가

---

▲ 천상의 소리내는 극락조와 성덕대왕 신종 콜라보작 『가릉빈가』

1995년에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께 동화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1년 과정이었는데 가을에 경주로 1박 2일 졸업여행을 가게 됐어요. 마지막 코스였던 대왕암 근처 바닷가에서 무지무지 많은 새 떼를 봤어요. 촉촉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새의 발자국과 그렇게 많은 새가 날면서도 부딪치는 일이 없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처음에는 환경 동화를 쓰고자 했어요. 그런데 갈수록 새의 소리와 발자국,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결국 천상의 소리를 낸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와 성덕 대왕 신종과 버무려 『가릉빈가』 초고를 쓰게 됐어요.

비로소 2021년에 20년도 넘게 묵혀 두었던 초고를 수정해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아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됐답니다.

▲ 니체의‘아모르 파티(Amor fati)’가릉빈가에 녹아있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메시지를 『가릉빈가』로 하여금 전달하고자 했어요. 니체의 말처럼 내 운명은 내가 만들고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 그것을 들려주고 싶었죠. 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러 상황을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결정론이나 숙명론적인 삶이 아니라, ‘내 인생은 내 거다, 내가 만들어 간다’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가릉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살고 싶다는 제 욕구가 가릉에게 투영된 거지요.

대물림된 종 제작 일이 숙명이었던 가릉은 주변의 모든 것을 수용하는 데에 넘어서서, 천상의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드는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요.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운명의 길을 처연히 걸어간 가릉은 마침내 성덕 대왕 신종 제작 과정에 바쳐진 딸 빈가의 소리와 어울려 천상의 울림을 주는 ‘가릉빈가’로 태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인 것이지요.

이번에 새로 출간한 동화,『가릉빈가』

---

▲ 『엄마는 파업 중』 실제 경험과 해외토픽이 재료

서울 혜화동 2층에서 살 때였어요. 어느 날 보일러 통을 타고 쥐 한 마리가 부엌으로 들어왔어요. 저는 쥐를 잡지 않으면 밥을 안 하겠다고 말하고는 정말로 일주일 동안 밥을 하지 않았어요. 파업을 한 거지요.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은 굉장히 신나 했어요. 계속 외식을 했거든요. 결국 남편이 일주일 만에 여기저기 뒤져서 쥐를 잡을 수밖에 없었지요.

1996년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서너 줄 정도의 아주 짤막한 기사가 실렸어요. 어느 나라에서 엄마가 일하기 싫다고 나무로 올라갔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것을 본 순간, ‘맞아, 바로 이거야!’하고 무릎을 탁, 쳤지요.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해외 토픽을 자주 접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어렸을 때 나무 위로 올라간 경험과 저의 집에서 일어난 상황을 재료로 삼아 단편으로 『엄마는 파업 중』을 완성하게 됐어요.

▲ 『엄마는 파업 중』 초등 국어교과에 실려

『엄마는 파업 중』 책에는 「엄마는 파업 중」 외에도 「고은별 이고은별」이라는 성평등 동화가 수록돼 있어요. 96년경에 새벗 잡지에 발표한 동화로, 고은별 학생이 아빠 성 앞에 엄마 성을 붙인 ‘이고은별’로 불러주기를 원하는 호주제 문제를 다룬 단편이지요. 저는 이 땅에 사는 여성으로서 성평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답니다. 타인끼리 만나 ‘우리’가 됐으면 당연히 모든 일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업주부는 전업주부의 역할을, 맞벌이 부부라면 집안일을 서로 나눠야 하는 거죠.

2001년도에 『엄마는 파업 중』 제목으로 첫 작품집을 발표했어요. 시대적으로 점점 여성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일간지인 한겨레, 중앙, 조선에서 우리나라 첫 페미니즘 동화로 책 소개를 해 줬고,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는 영광을 얻어 제 대표작이 됐지요.

17년 동안 초등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보니 학교에서 이 작품으로 토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파업을 찬성하는 찬반 토론 중 처음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의 파업을 반대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아주 힘들 때는 파업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돌아섭니다. 그 모습을 볼 때나 다른 선생님들에게 듣게 될 때, 작품 쓰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

▲ 어렸을 적 첫 꿈을 지니게 해준 『행복한 왕자』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썩은 사과 이야기」와 「큰 바위 얼굴」을 무척 좋아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소개할게요. 제가 처음으로 갖게 된 저만의 책이자 참 많이 좋아하는 책이랍니다.

남쪽 나라를 찾아가던 제비는 행복한 왕자 동상의 말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왕자의 사파이어 눈과 황금을 벗겨 나누어 주지요. 그 과정에서 눈이 먼 왕자를 사랑하게 된 제비는 왕자의 곁을 떠나지 못하다가 눈이 내린 날에 그만 얼어 죽고 말아요. 그 순간 왕자의 심장은 둘로 쪼개져 버리지요. 황금 칠이 벗겨진 초라한 왕자의 동상은 용광로 속으로 사라졌지만, 납으로 된 심장만은 절대로 녹지 않았어요. 때문에 죽은 제비와 함께 납 심장은 쓰레기장에 버려지지요. 어느 날, 하나님은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두 가지를 가져오라고 명을 내려요. 그 명을 받고 땅에 내려온 천사는 왕자의 납 심장과 제비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갔고, 그것들을 본 하나님은 왕자와 제비를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해 줬다는 내용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왕자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행복한 왕자를 만나러 가야지’하고 생애 첫 꿈을 지니게 됐었어요. 그랬던 만큼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은 무척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랍니다.

▲ 2년 남짓 화순 서태리에서 살다

몇 번 화순으로 ‘작가와의 만남’을 하러 온 적도 있었지만, 화순읍 서태리에서 직접 살았던 적이 있어요. 칠·팔십 년대에 지어진 기와집이었는데 제가 무척 좋아하는 집이었죠. 화순은 이름처럼 온화하고 순한 사람들이 사는 곳 같아요.

훗날 정년퇴직하면 들어가 살려고 화순군 이서면 야트막한 산에 땅도 조금 샀었어요. 하지만 세상일은 한 치 앞도 모르겠더라고요. 서태리에서 산 지 2년 조금 넘어 남편이 대안학교를 시작했기 때문에 광주로 이사를 나와야 했어요.

▲ 화순 운주사, 차기작품 모티브

가릉은 혼자 꾸는 꿈을 향해 처연하게 걸어갔어요. 개인의 삶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느끼게 해 준 거지요.

화순에는 대중들이 모두 함께 꾸는 꿈을 이뤄간 운주사가 있어요. 제 차기 작품의 모티브인 운주사는 지금의 함께 손잡고 이뤄나가야 하는 시대와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화순군민분들은 시대에 앞서 꿈을 꾸고 그 염원을 이뤄낸 유서 깊은 운주사가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시라는 말씀을 전달해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