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토탄을 채취한 뒤 고인 물의 수로와 좁고 긴 땅들이 생겨난 모습, 수변 가옥도 보인다./George Steinmetz

이 사진은 홍수가 난 장면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호수 위 인공 농지 피트란드입니다.

네덜란드는 예로부터 늪지에서 토탄(peat, 이탄)을 캐내어 연료로 사용했지요. 토탄을 채취하면 땅이 패이고, 그 자리에 물이 고여 사진처럼 긴 수로와 작은 섬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좁고 긴 섬들 위에 집이나 오두막을 세우고, 나무를 심고,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이 집들을 보니 지금은 소식이 끊긴 러시아 철도연구소VNIFF 친구 생각이 납니다. 하루는 그의 별장으로 초대받았지요, 러시아에서는 국가공훈자에게 모스코바 인근의 조그만 별장을 제공하거든요. 친구의 부친이 장성 출신이라 덕분에……. 저렇게 조그만 집에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고 합니다. 겨울만 빼고 봄, 여름, 가을 동안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 별장을 다차(дача, Dacha)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전통의 작은 별장·전원주택을 총칭합니다. 대부분 대도시 인근 교외에 위치하며, 규모는 크지 않고, 여름철에 가족들이 휴가를 보내거나, 텃밭을 가꾸며 지내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건축양식은 다양하지만 제가 방문한 별장은 A형 텐트 느낌의 간단한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마치 사진 속 네덜란드 건물처럼.

원래 다차는 17~18세기 귀족과 지식인층에서 시작했지만, 소련 시대에는 당 간부, 장성, 과학자, 문화인 같은 국가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국가 소유 토지를 무상 임대하는 형태로 배정되었습니다. 소련 붕괴 후 토지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다차는 누구나 구입·건설할 수 있는 사유재산이 되었습니다. 대다수는 도시 근교에 우리 식으로 밭 두 마지기 크기의 소규모 텃밭을 분양받아 주말마다 가서 채소, 과일을 키우는 용도였습니다. 주말농장이지요.

좁고 긴 땅에 우리 농막 같은 사이즈의 A형 목조 건물, 30년 전의 시간을 소환해봅니다.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문정기
도곡면 천암리 출생
화순저널 고문
공학박사
현 만안연구소 소장, (사)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