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갑 호고문화재보존연구소장.

연어는 알을 낳으러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그 길이 험하고 고돼도 혼신의 힘을 다해 그곳에서 소임을 다하고 생을 마감한다. 나는 내 인생도 연어의 삶과 같다고 생각했다.

최근 큰딸이 내게 “아빠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생활하기도 불편할 텐데 왜 굳이 거기에 집을 지으려고 해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게 “거기가 아빠 고향이니까.”라고 대답했다. 딸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향이라도 아무것도 없는데 가고 싶은가?’라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서 더 내려가는 거야. 이제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아빠가 가서 다시 옛날처럼 사람 냄새나는. 너희가 언젠가 아빠 나이가 됐을 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 주고 싶기도 하고.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라도 아빠 같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함께 노력하면 시골도 조금씩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 딸은 이내 “아무것도 없이 불편해도 고향이란 게 그렇게 좋은 거야?”라고 묻고는 “그럼 아빠가 거기 있을 테니까 앞으론 내 고향도 거기네~!”라고 방끗 웃으며 말했다.

내 고향은 화순군 이양면 송정이다. 딸의 말대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다. 사람들도 떠나고 어르신들도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빈집들만 듬성듬성 남아있는. 그 시골 구비 진 길을 돌면 낮은 언덕 같은 작은 산 밑 14살 어린 나와 어머니가 함께 흙을 쌓아지었던 집이 있다. 그 흙집은 90이 넘은 노모와 아직도 함께한다. 좋은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해도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어린 것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지은 집을 어찌 부순다냐... 나는 그냥 이 집에서 눈 감을 란다...’

나에겐 그 어린 시절이 즐거운 추억으로 흘러갔지만, 어머니에겐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나 보다. 내가 어릴 적 고향에는 아주 근사한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샘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멋진 집이었다. 기와와 돌로 쌓아 올린 담도 있었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던 그런 멋진 집이었다, 내가 살던 흙집 방문에서 바라보면 정면으로 그 집이 보였다. 어릴 적 그 집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언젠간 꼭 저곳에 내가 더 멋진 집을 짓고 살아야지!’ 그것이 내 생에 첫 꿈이었다. 가슴에 그 꿈을 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돈을 벌러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열심히만 살았다. 단 한 번도 꿈이 바뀐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나름 성공도 했지만 내 꿈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내 나이 72살, 올해 말이 되면 나의 고향에 나의 70여 년 인생이 지어진다. 투덜댈 법도 하지만 묵묵히 옆에서 나와 같은 꿈을 꾸어준 고마운 내 아내와 함께 평생을 조금씩 준비해 오던 꿈이 이루어진다. 딸의 말대로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집을 짓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작디작은 어린 시절 가슴에 담은 나의 꿈을 이룬다. 이제는 그곳에서 나를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고향’이라는 따뜻한 정을 선물하고 싶다.

차병갑
호고문화재보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