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엘레지

문병란

​오월이 되면
저 아름다운 산과 들
온갖 찬란한 꽃들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왜 눈물이 나오는가?
치런히 흐르는 푸르른 신록의 눈부심
저 미치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왜 우리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무심코 들을 수 없는
무등산 기슭에 와서 우는 뻐꾸기 소리
저 단장의 마디 울음을 들으면서
우리는 왜 쓴 울음 넘어오는 피 도로 삼켜야 하는가?
숨쉬는 자유, 살아 있는 육신의 기쁨으로
먹고 마시고 웃고 울고 사랑하면서도
우리는 왜 살아남음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그 노래 부르고 외치면서도
우리는 왜 아직도 부끄러움뿐인가 비겁함뿐인가?
간 자는 원통하고
산 자는 부끄러운 이 나라
뚝뚝 망울 트는 장미꽃을 보면서도
찔리운 가시의 섬��한 전율
모질도록 으깨어버리고만 싶은
이 목구멍 틀어막는 울분은 무엇인가?
죽은 자의 원한과
산 자의 분노가 합하여 이룬
이 슬픈 오월의 엘레지를 아는가?
새파랗게 살아 있는 가슴에
총을 쏜 자여,
산산히 부서진 두개골을 딛고
승리의 미소를 띈 자여,
우리는 정말 잊어야 하는가?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 일처럼

어떻게 어떻게 잊어야 하는가?
그대들이 양주로 목을 축이며
승리의 기쁨 나누고 있을 때
눈알이 튀어나온 젊은 아들의 시체를 부여안고
피눈물로, 오장육부 쥐어짜 울던
한 어머니의 피맺힌 절규,
저 처절한 통곡을 아는가?
지금은 상처가 아물고 있다고
지금은 외과수술보다 성형수술을 할 때라고
너무도 쉽고 너무도 뻔뻔하게
하수인의 주둥아리 놀리는 작은 부리들이여,
너희들은 정말 발 뻗고 편히 잠잘 수 있는가?
오월이 몇십 번 왔다 가도
오히려 장미꽃보다 짙은 분노,
그 가시보다 모진 아픔으로
묵은 상처 깊이 아리는
이 민중의 원통한 피눈물을 아는가?
우리들의 가슴에 감추어져 있는
이 날카론 원한의 비수를 아는가?
아직도 오월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광주는 계속되고 있다
절절히 외치는 역사의 소리
오월의 산하 가득히 여울져 흐르는
오 이 땅의 통곡 소리를 듣는가?

- 문병란 시인(1935~2015) 화순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