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사람들 칼럼> 화순의 성자, 이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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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사람들 칼럼> 화순의 성자, 이세종
  • 입력 : 2024. 10.04(금) 17:01
  • 화순저널
이세종 생가.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영맥이 어떻게 이천 년을 지나 조선 땅까지 오게 됐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 세월 동안 많은 터를 거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왜곡되었으리라. 그 빛 알갱이 하나가 화순에도 떨어져서 위대한 열매를 맺었으니, 그가 바로 도암의 이세종이다.

이공(李空) 이세종(1877-1942)은 화순 청풍 차리에서 태어났지만, 살았던 곳은 도암 등광리이다. 일제강점기 시대 이미 선생을 알아본 정경옥 교수는 이공을 성자라 칭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깨달음과 신앙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 세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진정한 희생의 모범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를 이공 성자라 일컫게 되었다.

원래는 그악스럽고 욕심 많던 인격체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그의 일화들은 어느 정도 알려졌기 때문에 더 부연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의 기독교 현실에서도 여전히, 또한 새롭게 해석할 여지는 다분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신적, 사상적으로만 본다면 수운 최제우 이래, 사상적으로는 유영모, 영성적으로는 이세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평소 만난 적은 없지만 이세종의 제자 이현필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이분들 자신들은 인식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미래 세대의 사상과 영성을 여는 통합영성의 시초가 되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세종의 신앙과 삶은 독특한 한국적, 토착적 성격을 지녔다. 그의 신앙은 기독교 울타리를 넘어 전 인류에 미치며, 나아가 인류를 넘어 뭇 생명체들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의 신앙은 악착같이 이뤘던 부에 대한 집착을 떨치게 했으며,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줬다. 그의 투명한 영성은 길가의 칡넝쿨도 무심코 밟아 해치지 않으려고 조심하여 치우게 했다. 왈패들의 폭력에 화를 내기는커녕 그들 앞에 무릎 꿇으며 때리느라 아팠을 손을 걱정하는 모습은 사회복지나 생태주의, 이타주의로만 해석할 수는 영역이다. 이 모든 행위는 그의 영성적 뜨거움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상식의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한심한 세상은 그를, 그 제자들을 핍박했다. 한국기독교는 그를 이단으로 몰아 정죄하려 했다. 아직도 그렇다. 그나마 근래 조금 열려진 학자들에 의해 이공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미미하다. 이공은 그들의 범위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필자는, 영향력 있는 모 기독교 집단이 이공에게서 재산을 기증받은 후 보존하지 않고 처분해버렸던 것, 그것도 모자라 이공을 이단으로 몰아갔던 것에 대해 사과와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이라도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화순군과 현 군수가 이세종의 위대함을 늦게나마 깨닫고 기념하는 사업들을 의지를 갖고 기획한다는 것이다. 행정에 고도의 통합영성을 이해시키기는 힘들겠지만 우린 그 사업이 청빈의 영성을 실천했던 이공 선생의 정신에 조금이라도 다가서는 계기를 만들기 바란다.

이렇게 큰돈이 들어가는 사업에는 꼭 젯밥에만 관심 있는 사이비 관계자들이 몰염치하게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젯밥에 눈이 먼 자들에 의해 선생의 정신이 왜곡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화순군 관계자들의 명철함에 기대를 걸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 안타깝다.

우리 화순에 위대한 성자가 있었지만 외면과 핍박으로 방치한 실책을 스스로부터 인정한다. 그의 한국적, 통합적 영성에 세계사적 해석이 시작되도록 하는 것과, 사람들이 언제든 선생의 흔적을 따라 순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념하는 일이 우리들의 숙제로 남은 것 같다.

김한중 목사
진달래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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