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림 유족회장은 한국전쟁 전후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유가족 단체들이 연대해 진실 규명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74주기를 맞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미해결 화순유족회’의 회장인 양회림 유족회장을 만났다. ‘화순 광부 학살 사건’을 비롯해 전쟁 전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미해결 유족회의 활동 등에 대해 듣고 화순군민과 화순저널 독자들에게 전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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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와 투쟁으로 ‘진실·화해 기본법’ 쟁취할 것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74주년이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혼란스러웠던 시절, 미군에 의해 희생된 국민들도 많았습니다. 화순의 탄광 노동자들도 미군에게 탄압당했습니다. 공식 집계에 의하면 화순군의 희생자가 1,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족회에서는 비공식적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유족회는 ‘한국전쟁 전후’라는 표현을 써서 다양한 유가족 단체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선감학원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서산개척단 사건 등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희생된 민간인 유족 단체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 기본법’이 제정되면 긴 시간을 고통받았던 유족들의 슬픔과 희생자들의 맺혀 있던 한이 풀려 화합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 화순 칸데라 1946, 무고한 민간인 무자비하게 학살한 미군

해방 이후 화순광업소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자체적으로 탄광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화순광업소를 적산(敵産)으로 보고, 이 탄광을 접수하기 위해 능주초등학교에 보병 부대를 주둔시켰습니다. 미군이 개입한 이후 탄광 노동자들의 급여는 일제가 경영하던 시기보다 적어졌습니다. 배급도 밀리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1946년 2월부터 ‘최저 생활 확보 임금제’ 등을 요구하며 데모하기 시작했습니다.

1946년 8월에는 미군과 경찰이 너릿재를 넘어가려던 민간인을 장갑차와 총검으로 저지해 30여 명이 죽고 500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은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너릿재를 넘어가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입니다. 부당한 탄압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추모공원 내부에 조성된 위패봉안실. 804기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이 중 200기는 미해결 희생자들의 위패다.

▲ 미군에 희생당한 아버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아버지는 해방 전부터 화순광업소에서 일하셨습니다. 저와 가족들도 어린 시절에는 화순광업소의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카바이트가 타고 남은 재를 가지고 누나와 소꿉장난하며 놀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1946년 11월 4일은 탄광 노동자들이 전부 들고 일어나 미군에 대항하는 궐기를 일으키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시위를 강제 진압하던 미군 CIC의 트럭에 깔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변을 당했다고 하니, 작은아버지가 당시에 5살이었던 저를 업고 철길을 따라 학살 현장까지 걸어갔었습니다. 그날 군인들은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준비하던 광부들마저 대대적으로 진압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사체를 수습해 제대로 된 무덤으로 모시지도 못하고, 야산의 공동묘지에 가묘를 세웠습니다. 인터뷰를 많이 해 봤지만,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눈물이 납니다. 진화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받을 때도 우느라 말을 못 할 정도였습니다.

▲ 공권력에 의해 학살당하고도 ‘빨갱이’로 몰려 2차 피해까지, 억울한 피해자들

화순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군민들이 잘 모르는 것은 슬프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만 해도 공권력, 즉 군인이나 경찰에 의해 희생당한 민간인은 전부 사상범으로 몰렸습니다. 소위 ‘빨갱이’라며 피해자를 사상범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때문에, 억울하게 가족을 떠나보냈던 유족들도 사건에 대해 쉽사리 말하지 못하고 쉬쉬했습니다.

양회림 유족회장이 피해 사실을 말할 수조차 없었던 당시의 분위기와 억울함에 대해 전했다. 사진은 추모공원 내부에 조성된 민간인 희생자 추모교육전시관.

죽임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빨갱이’로 몰려 명예까지 잃게 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살아가던 선량한 사람들에게 무슨 사상이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겪었던 ‘화순 광부 학살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업소에서 일하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항쟁했던 선량한 민간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도가 되어 학살당했습니다.

▲ 민간인 희생된 비극, 끝까지 기억하고 진실 규명해야 되풀이되지 않는다

화순의 추모공원 내부에 조성된 추모교육관 입구는 희생자와 관련된 기록을 남겨 뒀습니다. 하지만 민간인이 희생된 규모에 대해서만 설명할 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는 기록하지 않아 아쉽습니다.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진실을 규명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은폐되고 금기시된, 해결되지 못한 피해자들의 역사는 잊혀지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족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견뎠으나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유족들이 많습니다. ‘화순 광부 학살 사건’은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 진실 밝히고 유족들의 한 풀기 위해 죽는 날까지 노력할 것

나드리 복지관 인근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추모공원 위패봉안실에는 804기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중 604기는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이 규명되어 사실이 밝혀진 분들이고, 일부는 배·보상을 결정 받았습니다. 나머지 200기는 아직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미해결 희생자들의 위패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겪었던 그날의 진실을 밝히고, 우리 유족들이 한을 풀 수 있도록 죽는 날까지 노력하고 싶습니다.

아마 화순에 살면서도 대부분은 추모공원이 어떤 공간인지, 심지어는 그런 공간이 있는지조차도 잘 모를 겁니다. 민족의 쓰라린 상처를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추모공원인 만큼, 지금이라도 군민들이 근처를 통행할 때 숙연한 마음으로 희생자들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추모교육전시관 입구에 남겨진 민간인 희생 규모 기록. 양회림 유족회장이 아쉬운 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추모공원 내부에 조성된 한국전쟁 전후 화순지역 민간인 희생자 추모탑에서 묵념을 올린 양회림 유족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