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지어준 사람의 소망과 기원을 생각해 숙고해야

칼럼
개명, 지어준 사람의 소망과 기원을 생각해 숙고해야
대법원 통계로 보면 개명은 연평균 15만 건
범죄자들이 신분 세탁으로 개명을 악용하는 부작용도 발생
  • 입력 : 2023. 09.13(수) 19:42
  • 문장주 칼럼니스트
개명(改名)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옛 이름을 지우고 새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작년 한 해에 개명 신청한 수는 16만 3,000명으로 대법원의 통계로 보면 연평균 15만 건 정도에 이른다.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인권을 보장하는 성명권은 헌법에서 행복 추구와 인격권의 한 내용을 이룬다는 판례가 나온 이후로 개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법원이 발행한 <역사 속의 사법부>에는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던 이름들의 순위가 쓰여 있다. 1948년 해방 직후에 인기가 있었던 남자 이름은 영수, 영호, 영식, 영철 등이고 여자 이름은 일본식 표기인 순자, 영자, 춘자 등이 가장 많았다.

2000년대 와서는 성별이 애매한 이름인 지원, 현서, 진서, 우진, 서연, 민서, 서현, 서윤 등이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가장 긴 이름은 17자로 ‘박하늘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러우리’가 있다. 처음에는 이름 글자 수도 제한이 없다가 1993년부터 성씨를 제외하고는 5글자 이내로 이름 글자 수를 제한하게 되었다.

개명신청을 한 내용 중에는 놀림거리가 되어 허가한 것도 많다. 김치국, 지기미, 조지나, 구태놈, 하쌍년, 김방구, 도덕년과 같은 이름들이었다. 외국식 이름을 우리 이름으로 바꿔 달라는 경우도 있다. 노병삼랑, 정천대자, 김다니엘, 한소피아 등이다.

그 외에 부르기 힘든 이름을 바꾸는 예로는 박시알, 신재채, 정쌍점 등이다. 2009년 여성 7명을 납치 살해한 강호순 사건 때는 강호순과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기 위해 개명 신청 건이 밀려들 정도였었다.

예전에 법원은 개명 허가에 매우 인색했었다. 이름을 함부로 바꾸면 사회 혼란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2005년에 ‘범죄를 숨기거나 법을 피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개명을 허가해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로는 개명이 쉬워졌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들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세탁하는 경우가 잇따랐다. ooo가 나쁜 짓을 저지른 후 xxx로 개명을 하는 식이었다. 경찰은 용의자의 이름이 달라져서 수사에 애를 먹었다. 범인을 잡기도 어려웠지만 잡은 뒤에도 이름과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에 바빴다.

역사상 이름 바꾸기로 고생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벌어진 ‘창씨개명’을 들 수 있다. 1940년 2월부터 시작된 창씨개명은 조선인을 일본 천황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만들겠다는 황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한마디로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었으며,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징용대상자가 되었다.

창씨개명을 독려해도 1945년까지 창씨개명 신고율이 7.6%밖에 안 되자 조선총독부는 강제로 법을 수정하고 유명인을 동원하는 수법으로 결국 79.3%까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일본인 중에는 조선인과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기도 했었지만, 해방되고 1946년에는 창씨개명도 완전 폐지되었고, 조선인들은 원래의 이름으로 다시 회복했다.

조선시대에는 이름 바꾸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임금에게 아뢰고 임금의 말을 문서로 담당하는 예문관에 보내서 조상이나 죄인의 이름이 같은 경우와 양인(良人)중에서 허락 받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름이란 그 사람을 부르는 사회적 약속이다. 또한 자기의 것이면서도 모두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쉽게 바꾸고 너무 쉽게 허가해주는 세상이 된 뒤로는 ‘신분세탁’과 같은 부작용도 생겨난 것이다.

남성 본위의 호주제도가 2008년에 폐지된 지도 10여 년이 넘었다. 또한 가족관계 등록법의 시행으로 가(家)가 아닌 개인을 기준으로 하여 가족관계 등록도 작성되고 있어서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고 일가를 승계할 수도 있게 됐다. 세상 모든 사물은 이름이 있고 이름이 갖는 의미도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소망과 기원이 담겨 있으며 가계를 대표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고 나라는 것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름을 불러 주기를 바라고 이름이 자신을 유의미한 존재감을 느끼게 하기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나보다.

개명(改名)도 지어준 사람의 소망과 기원을 생각해서 함부로 바꿀 게 아니라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뿐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
문장주 칼럼니스트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