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삶을 보여준 김지원·박금자 부부

추석명절이 코앞인 대목장이라 화순고인돌전통시장이 모처럼 북적북적 활기차다.
만현식품가게 앞에도 야채를 사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구입할 야채 값을 흥정하고 있다.

“저 배추는 얼마다우?”
“이짝것은 2만 5천 원, 저짝것은 3만 원.”
“징허네야잉~”
“징혀? 농사짓는 사람한테 징허다고 해 봐. 어찌 속아지 없는 소리허냐고 그럴겅께.”
“뭣이 안 나옹께 글제에~”
“올해는 날씨가 그래, 어쩔 수가 없어. 이해를 허고 잡솨야 돼.”
“오늘은 가격이 좀 그래도 그냥 사도 돼. 다음 장은 더 비싸져.”
“요거이 속이 좋고만. 요거 가져가아.”
“어이, 여그 김치 담근다고 이것저것 많이 가져강께 당근 두어 개 더 얹어줘”

▲ 일가친척 같은 단골손님과 이웃들

손님에게 만현식품가게 단골이냐고 물으니, 10년 넘게 단골이라고 한다.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화순장에만 오면 여기를 찾는단다. 이 가게가 뭣이 좋아 단골이 됐냐고 하니, 보시다시피 일단은 친절하고 잘해주고 술렁술렁 싸게 많이 담아주니까 좋다고 한다.

몇 주전 마동욱 사진작가의 연락을 받고 화순고인돌전통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때도 단골손님들이 고른 야채를 싸 주느라 박금자 씨의 손이 분주했다.

“저 고구마단은 얼마요?”
“7천 원.”
“비싸요.”
“아 요것은 상품이여. 좀 떨어진 것은 여기 있어. 5천 원짜리. 좋은 것 준 것이니께 걱정 말고 가져가쇼. 쪼까 빼 줄게잉.”

야채를 담아주며 손님들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도 눈길과 손길이 바쁘다. 다른 야채 박스를 스캔해서 상품가치를 떨어뜨리는 전잎을 떼내는 등 손질을 해서 바구니나 박스에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는다.

가게 안쪽에서는 어느 식당에서 주문이 들어왔는지 박지원 씨가 주문 야채 박스를 인부의 손수레에 실어 보내고 있다. 오래된 단골 아주머니가 찾아와 물건을 달라고 하는데 박금자 씨가 요청을 한다.

“저 분이 우리집 양반이랑 친하니께. 얼른 같이 찍어주쇼.”
“아니 여자분인데 질투 안 나신가요?”
“아이고 무신 질투는 질투. 여기서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맨디이.”

사십여 년의 세월을 이곳에서 함께한 사람들이니 일가친척이나 다름없는 이웃들이다.

▲ 대를 이어 찾는 단골 손님들

단골 손님들 중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 손잡고 다녔던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애들이 다 커서 결혼까지 한 후 다시 찾아와서는 ‘지금도 장사하세요’ 그런다. 그러면 우리가 오래 살았구나 싶더라.

자식들의 간청에 추석만 쇠고 그만 장사를 접을라고 했는데 이것마저 놔버리면 서운할 것 같아서 한 오 년을 더할까도 생각한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뒤를 이어갈 사람도 없고... 지금은 화순장하고 능주장에서 용돈벌이만 하고 있다.

화순고인돌전통시장과 능주전통시장에 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갖가지 싱싱하고 푸짐한 야채들 속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야채를 파느라 이리저리 분주한 김지원·박금자 부부(만현식품 주인장)를 당분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 재산이라곤 맨주먹 하나, 5만원 빚내서 시작한 야채장사

김지원 씨는 77년도에 32개월의 군대생활을 마친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장남으로서 고향집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내내 못 잊히고 마음에 걸려 고향 화순으로 내려와 정착해 살기로 작심했다.

당시에는 선친들에게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맨주먹밖에 없었다.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조금 알게 된 야채 장사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 나이가 24살 때였다. 장사 밑천이 없어서 남의 돈 5만 원을 빌려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해 빚을 다 갚고 장사 밑천도 마련됐다.

그때 친구들 몇이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월급이 1만 8천 원이었다. 돈 버는 것으로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다. 나는 비록 장사를 했지만 그 몇 배를 벌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차 한 잔도 마시고 싶지 않았고... 그런데 친구들이 그러더라. 언젠가는 우리보다 니가 빛을 먼저 볼 것이라고...

▲ 앞에서 수레 끌면 뒤에서 밀어줄 사람 만나다

내 나이 28살, 79년도에 안사람(박금자)을 만났다. 없는 살림이라 편하게 못 해줄 형편이고 해서 결혼은 생각도 안 했는데 주위에서 하도 권해서 선을 봤다. 뭘 바라는 것은 없고 그저 내가 앞에서 수레를 끌면 뒤에서 밀어줄 사람이면 된다고 하니, 바로 승낙을 해주더라. 선본 지 한 달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80년도에 큰 아들을 낳았고 3년 후에 둘째 아들을 낳아 키우는데, 돈 벌 연구에 제대로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키웠다. 지금은 엄청 후회된다. 하도 가진 게 없다 보니까 애들 뒷바라지보다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품에 안고 키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 자식들 장래 생각에 일찍 광주로 유학 보내다

옆에서들 왜 자식을 둘만 두었냐고 묻는다. 내가 못 배웠기 때문에 아이들은 잘 가르치고 싶었다. 나처럼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들이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에 올라가자 여기 시골에서 공부하면 안 되겠다 싶어 광주에 월세집을 마련해 내보냈다. 그때는 너나 나나 아이들 공부시키려고 광주 등 도시로 아이들을 유학(?) 보내던 시절이었다.

일 년 후엔 아예 광주에 집을 구입했다. 처음에는 아들 둘이만 있다가 얼마 안 있어 애들 외삼촌네들이 이삼 년씩 보살펴 주기도 했다.

▲ 어린 아들 둘이 떼어 놓았던 것, 두고두고 가슴 미어지다

그런데 아이들이 졸업을 하기 전부터 후회가 됐다. 같이 살았으면 에미가 해준 밥 한끼라도 따뜻하게 얻어먹고 살았을 것인디. 공부시킨다고 떼어놓으니 둘이 밥해 먹고 학교에 다녔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교복 한 번 제대로 못 입혀서 학교에 보낸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때 뒷바라지 해주고 지금 돈 벌어도 되는데... 그래도 지들 갈 길 갔으니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 배우고 싶다는 것은 끝까지 책임지겠다

아들 둘 다 여기서 대학을 마쳤다. 큰 아들은 중국어과를 전공한 후 석사학위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대학에서 받았다. 대학원 과정이 4년인데 가기 전에 학비며 생활비며 많이 드는데 허락해 주실 거냐고 하더라.

그래서 돈을 벌어서 재산을 너희들 앞으로 놔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고 싶은 것은 대학원이든 유학이든 배우는 데까지 책임지고 뒷바라지 해주겠다고 했다.

▲ 늘 노력하는 자랑스런 큰아들

유학생활도 힘들었을 텐데 공직생활을 하고 싶어서였는지 우리들 몰래 1년에 두 번씩 시험보러 한국에 다녀갔더라. 무거워서 끌지도 못할 정도의 짐보따리를 싸서 끌고 다니면서 고생고생했던 것이다.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동시에 장학금 2천만 원도 받아오고 시험도 500대 1로 합격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 후 큰아들이 우리 부부를 앉혀놓고 큰절을 올리는데 뒤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첫 근무지로 발령난 곳이 장흥군청이었다. 친척들은 화순이나 보성으로 오게 하면 어떠냐고 했는데, 울 아들이 절대 어디 가서 어려운 부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정정당당하게 앞으로 갈 것이니까 걱정 말라고 하더라.

군청에서 일하면서도 열심히 했는지 전남도지사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 후 도청으로 발령이 났는데 장흥군수님이 안 놔 주려고 해서 억지로 가다시피 했다. 그래도 ‘큰 데로 가서 살아야지’ 하면서 덕담을 해 줬다. 지금도 보면 노력을 많이 한다.

▲ 내 식구 ‘진미’한테 잘해줘라

작은아들은 서울의 드라마제작회사에서 피디로 일하고 있다. 며느리도 드라마 작가이다. 8년을 연애하다가 3년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첫째와 순서가 안 바뀌게 하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는데 잘 안 되더라. 결국 둘째가 먼저 식을 올리도록 첫째가 승낙을 해 줬다.

10년 전에 우리 부부가 여행을 가는데 인천공항으로 지미(둘째 며느리)가 배웅을 나왔더라. 첫 만남이었는데 ‘아버님’하면서 포옹을 하길래. 언제 봤다고 어버님이라고 부르며 포옹을 하는고!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딱 맘에 들었다. 인상이고 뭐고 내 식구가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둘째에게 ‘진미’한테 잘해 줘라고 했다.

▲ 우리 고생, 하늘이 알랑가 땅이 알랑가

제일 힘든 것이 새벽 2시에 일어나 농산물공판에 나가 물건을 구입해 오는 것이다. 그날그날 물건을 가져다가 싹 팔고 또 다음날 것을 구입해서 팔아야 하고 명절만 빼고 날마다 그렇게 일했다. 그래서 저녁에는 제아무리 좋은 자리, 별스러운 약속이 있다고 해도 귀에 안 들어온다. 오로지 얼른 씻고 쉬고만 싶을 정도로 녹초가 된다.

밭떼기 장사, 학교납품, 식당 납품, 전화 주문 배달에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밥을 제때에 못 먹는다. 부식가게라 밥때에 더 바쁘다. 옛날에는 저녁밥 할 때가 되면 가게 앞에 줄줄이 서서 기다렸다가 물건을 사 갔다. 한때는 인부를 하루에 20명씩 쓸 때가 있었다. 어느 때는 밥 먹는데 수저가 부족할 때가 있었다.

너무 정신없는 세상을 살았다. 우리들이 고생한 것은 하늘이나 땅이나 알랑가 모르겄다.
이 장사를 보통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말이 그렇지. 하루에 300~400만원씩 매상이 오르려면 그만큼 일이 힘들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 우리 고생 모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알고 있고마잉

12년 전부터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물건을 떼면 운반해야지, 배달해야지, 20kg씩 되는 것을 들어올리고 내리고 하다보니 무릎이 다 어긋나고 허리도 안 좋아졌다. 야채는 그날 다 팔아야지, 못 팔고 놔두면 무조건 적자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 처리를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도 많다.

애들이 봤을 때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조금씩 하라고 하다가 이젠 그만두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 욕심이라, 남의 뒤에 서는 것도 싫고, 내 손님들이 와서 물건이 적다고 언짢은 말을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내일 그만둘망정 오늘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사니까 이 자리까지 오긴 왔다. 예순 살까지는 어떻게든 해 왔는데 지금은 갈수록 몸이 안 따라준다.

그래서 매일 열었던 야채가게를 2007년도에 접었다. 너무 정신 없는 세상을 살았다. 우리 고생한 것을 내 형제 간들도 모른다. 동네 삼거리 주위 사람들이나 봤응께 고생한 줄 알고 생각해 준다. 우리 애들은 모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자식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만은 부모가 고생해서 뒷바라지 한 줄도 알아주고 생각해 주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 얼마나 더 좋은 걸 바라겠는가

내 자식들이지만 잘할 것 같으니까 마음이 든든하다. 애들이 저렇게 밥이라도 먹고 살고 제 자리들 잡아서 건강하게 사니까. 어디 가서도 설 자리가 있더라. 입때까지 본인들이 알아서 잘해 와서 더 할 말이 없다. 다들 갈길 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늘 건강하고 현실만 같으면 좋겠다. 얼마나 더 이상 좋은 것을 바라겠는가?

▲ 평생 열심히 살라고 노력하니까 덩달아 여기까지 왔제

집에서는 말 한마디 크게 할 것도 없는데, 시장에서는 왜 이런 물건을 가져왔냐? 물건을 잘못 가져왔다.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장날이면 맨날 티격태격한다.

안 건들면 뭐하러 술 먹겄냐? 하하. 술을 좋아한께 친구가 많고 장에 나가면 차 한 잔이라도 나눠 마셔야 되고. 벌면 쓸 줄도 알아야제.

그래도 술 쪼까만 먹고 다정하게 삽시다! 장날이면 취해부러. 이 사람이 오라하고 저 사람이 오라하고 가서 먹다 보면 술자리가 잦아. 술만 안 먹으면 싸울 일이 없어.

그래도 평생을 열심히 살라고 노력하는데 내가 뭐라고 하겄소. 그저 덩달아 뒤따라 가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