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 화순문학 편집국장.

쓸쓸히 중장터를 걷는다. 사각사각 이야기들이 밟힌다. 이곳 이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중장터, 켜켜이 쌓인 의문의 꺼풀들을 하나둘 걷어내고 싶다.

중장터를 흔히 중장이라고도 했다. 중장터를 걷다 보면 운주사 이야기, 장꾼들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유년에 각인된 한 사람, 천만이가 떠오른다.

중장터는 화순과 나주, 장흥이 만나는 접점이다. 그 우측 조그만 집, 천만이가 살던 집이다. 원래 고향은 대초리였는데, 어찌하여 이곳 중장터에 살았다. 우린 그를 ‘대초 천만이’라고 불렀다.

천만이는 중증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 손과 발, 목과 눈이 각기 따로 놀았다. 특히 눈과 혀가 빨개서 무서웠다. 그가 누더기를 걸치고 동냥하러 나타나면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나기 바빴고,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

하지만, 그는 불편한 몸으로 리어커를 밀어주고, 농사일도 거들어주는 등 마음이 부처님이었다. 그래서 배고픈 시절, 어른들은 그가 오면, 동냥은 물론 기꺼이 없는 쌀도 꺼내놓았다.

그는 달이 뜨면 운주사까지 오갔다. 그도 정상인처럼 걷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거기 어느 여인이라도 사모한 걸까.

중장터는 중들이 장을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중(衆)들이 일찍이 운주사로 반주 삼매를 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연장바우는 연장을 숨겨놓은 바우가 아니라 묘법연화경 즉 연화경을 숨겨놓은 바위다. 공사바우 또한 공사(工事)가 아니라 하늘 위에 운주사 곧 공사(空舍) 바위다. 천불천탑(千佛千塔)보다 천불천탑(天佛天塔)이다.(박춘기 내가 보는 운주사, 와불이 사라진다.) 법화경은 부처님의 진리를 연꽃에 비유해서 전한 경전으로 운주사 곳곳에는 법화경을 실현한 공간이라는 암호, 즉 연꽃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보물찾기처럼 연꽃 찾기를 해보면 어떨까.

중장터장은 상상 속의 장이다. 현실 세계에는 없다. 신자들이 천상 세계 구름(雲) 속에 머무는(住) 절(寺), 운주사(雲住寺)를 지상에 실현했듯 민중은 지상 세계인 불자들의 도량인 중장(衆場)을 상상력으로 중들의 장터로 만든 것이다. 몇 사람을 걸치면 그 낱말이 전혀 다르게 전달되는 놀이처럼 지금 운주사가 와불 전설을 통해 본질이 왜곡되고 말았다. 그렇게 세월이 쌓이면서 중(衆)이 스님으로 덮이고, 도량(道場)이 시골장으로 덮여 사라지고, 진짜 그 터만 남은 중장터가 되었다.

운주사 입구에는 거지탑이 서 있다. 천만이를 꼭 닮은 탑이다. 거지? 비렁뱅이가 아닌 거지(巨知) 크게 깨달은 천만이가 서 있다.

다시 중장터를 걷는다. 아마 지금 이 장터를 걷어내면 장을 보던 옛사람들이 나올 것 같다. 천만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또 한 꺼풀 걷어내면 사부대중의 간절한 소망도 깨어날 것 같다. 운주사의 실체도 드러날까. 다음 또 한 꺼풀 걷어내면 또 무엇이 있을까.

내일은 우바새가 되어 그곳 운주사로 반주 삼매에 나서고 싶다.


박용수
전남일보 신춘문예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
광주일보 수필의 향기 연재 중
광주동신여고 교사로 재직 중
화순문학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