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불가의 수행

칼럼
이뭣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불가의 수행
인생의 주체는 나 자신, 나를 찾는 수행으로 드는 화두
'못 찾겠다 꾀꼬리' 속에도 불교의 화두 있어
  • 입력 : 2024. 05.31(금) 10:34
  • 화순저널
백양사 입구 쌍계루. (한국관광공사 제공)
백양사 천왕문 앞에는 ‘이뭣고’라는 화두가 큰 비대석에 새겨진 탑이 있다. ‘이뭣고’란 무슨 뜻일까. 경상도 사투리로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뜻인 ‘이뭣고’는 1,700개에 달하는 불가(佛家)의 화두 중 가장 원조가 되는 시심마(是甚麽, 생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가)에서 나왔다.

‘이뭣고’ 화두에는 모든 자신이 본래 부처이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고 길을 묻는 나그네의 입장에서 본래의 나를 찾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마음도, 물건도, 형체도 없는 것을 ‘이뭣고?’라는 물음으로 ‘나’라는 인생의 진짜 주인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을 지배하고 이끄는 것은 결국 마음이다. 결국 ‘이뭣고?’라는 질문은, ‘마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이뭣고’ 화두를 수행하는 것은 곧 마음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진아(眞我, 참마음)를 찾아가는 것이고, 흩어지지 않는 마음의 경지인 숙면일여(熟眠一如)를 거쳐 벼랑 끝에 서서도 흔들리지 않는 초견성(初見性)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며, 한 걸음 더 깨우쳐 실제 견성이 되어 이른바 반야심경 속 ‘아뇩다라삼먁삼보리’(妙覺)의 부처가 되는 것이다. 즉, ‘이뭣고’란 성불(成佛)이 되기 위한 수행의 화두이다.

인생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자신의 주인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고, 생각으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다. 그 주인을 찾는 것이 곧 ‘화두를 드는’ 수행인 것이다.

1982년 조용필이 발표한 ‘못 찾겠다 꾀꼬리’의 가사 중에는‘눈을 감고 세어 보니 지금의 내 나이는 /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라는 대목이 있다.
백양사 천왕문 앞의 이뭣고 탑.(doopedia 제공)

당시 방황하던 조용필은 통도사의 경봉스님을 만나 노래를 불렀다. 스님이 잘한다고 칭찬하며 “네 안에 꾀꼬리가 들었구나! 네 안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조용필은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경봉스님은 찾아보라고 전했다. 꾀꼬리를 찾으라는 말을 생각하며 산길을 내려오던 조용필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그 답을 찾지 못해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곡으로 답을 대신했다.

꾀꼬리의 주인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이뭣고’와 같은 뜻이다. 비록 유행가의 가사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주인을 찾는 심오함은 불가의 화두를 담고 있다.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이 부자가 되기 어렵듯 마음도 함부로 쓰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을 버려야만 나 자신을 찾기 쉽다. 성철스님은 과거 절에서 행자가 쌀을 씻어 밥을 준비할 때 쌀을 한 톨이라도 샘터에 흘려놓으면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쌀을 한 톨이라도 함부로 하는 사람은 밥도 함부로 하고, 푼돈을 아끼지 않으면 살림도 헤프게 한다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내 주인인 자신을 잘 단속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당나라의 혜능대사(638~713)가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항상 움직이는데 한가운데 있어도 거둬들이지를 못하니 이것이 무엇인고’라고 말했듯, ‘이뭣고’는 인생에 주어진 커다란 숙제와도 같다. 이를 풀기 위해 동서고금의 성인들이 힘써왔고, 진여(眞如), 불성(佛性), 여래(如來) 등의 다양한 말로 표현됐다.

자신이 곧 인생의 주인이요, 자신을 끌고 가는 꾀꼬리를 찾는다면 정신을 흐리게 하는 불안, 방황, 망상, 우울도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있고, ‘이뭣고’는 자신을 살아있는 ‘나’로 만든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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