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빈 소개. 오른쪽부터 나주에 거주하시는 이재백 님, 김영산 님, 박한규 님. 경청하며 공감하고 박수 치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살아가면서 세 가지 이야기만 피하면 인간관계에 금 갈 일은 없다고 들었다. 정치와 사랑과 종교다. 가볍게 시작한 정치 이야기가 멱살잡이가 되고, 남의 애정 문제에 잘못 훈수 두었다가 평생 원수 되기 십상이다. 하물며 종교 문제로 죽고 죽이는 전쟁까지 하지 않는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피해지지가 않는다. 아마 그 세 가지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무엇보다 술안주로 이만한 것도 없을 성싶어서는 아닐지 싶다.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국회의원 출마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정치인이 글쓰기 경진대회라도 하는 것인지, 조금 뜬금없긴 하다. 독서 인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서점 찾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전 국민 독서 의욕을 고취 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 나름 괜찮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편치 않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삼십 년 만에 전화한 동창이 자기 큰 애 혼사를 말하는 것 같은 초대장 때문이다. ‘합법적 고지서’가 된 출판기념회 초청장이 공무원이나 기업하는 사람들은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오래된 동창 큰 애 결혼식 축의금 액수만큼 보험용 봉투에 얼마 넣을지도 고민일 것이다.

정치자금법상 정치후원금은 연간 한도가 1억 5,000만 원이고 선관위에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출판기념회는 경조사 성격이 짙다. 축의금이나 부의금으로 분류된다. 액수에 제한이 없다. 내역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 세금도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트림깨나 한다는 사람들 불러 모아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과시까지 할 수 있으니, 도랑치고 가재까지 잡는 격이다. 마다할 리가 없다.

나는 공무원도 아니고 사업하는 사람도 아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리영희 선생이 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 새가 날기 위해서는 양쪽 날개가 조화를 이루어야지, 한쪽 날개로는 날지 못한다는 은유로, 나는 이것을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의 조화로 읽는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인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가나다순)이 약진했으면 좋겠다. 태풍을 바라지도 않는다. 산들바람이라도 좋다. 답답한 날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스치는 느낌 정도의 바람이라도 불어 주었으면 하는 사소한 소망이다. ‘묻지 마, 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인 전남 화순·나주 선거구에서 굳이 진보당 출판기념회를 찾은 이유다.

신년 첫 번째 토요일(6일) 오후 나주문화예술회관을 찾았다. 진보당 안주용 예비후보의 출판기념회였다. 책 제목은 ‘안주용의 대답’이었다. 책값만 봉투에 넣었다. 좌석에 에이포(A4) 크기로 보라색 바탕의 두꺼운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다. 앞면은 ‘2024년 용이 승천한다’라고 쓰여 있고, 뒷면은 식순이 적혀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축사와 홍보영상과 후보자의 토크 콘서트가 주요 내용이었다. 중간중간 축하공연이 있고.

사전공연. 나주시 공산면에서 후보자와 같이 배 농사짓는 사람들로 구성된 난타팀.

난타공연으로 시작했다. 나주시 공산면에서 후보자와 같이 배 농사짓는 사람들이란다. 밝고 경쾌했다. 아마추어 냄새 물씬 풍기는 동작에 진심이 담겼다. 용이 승천한다는 구호에 어울리는 그야말로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라고 기원하는 듯했다.

공연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다는 진보(進步)와 보수(保守) 기준을 떠올렸다. 만원 버스 안에서, 아직 못 탄 사람들을 보며 승객들이 한 발짝씩 자리를 좁히며 같이 타고 가자고 하면 진보고, 자리도 좁은데 다음 차 타고 오라고 하면서 출발하자고 하면 보수라고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한참 고민했었다. 평소 나름 진보라고 자처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보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이런 고민이 필요 없는 진보이기를 내심 바랐다.

책을 펼쳤다. ‘이제는 이뤄야 할 ’레알‘ 진보정당의 꿈’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간단한 저자 소개가 있었다. 1993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주로 내려와 농사지으며 농민운동을 했다 한다. 진보정당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두 딸 지현이, 채현이와 어렸을 적 했던 약속 때문이고. 대학입시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책 내용은 참신했다. 화순과 나주 주민 24명이 묻고 후보가 답하는 형식이었다. 묻는 분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농민, 자영업자, 학생, 학교급식원, 택배기사 등 20대부터 60대까지. 토크 콘서트에서 안주용은 이렇게 말했다.

“보통 출판기념회 가서 책 보시면 솔직히 재미없잖아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쭉 적어놓은 것이어서 그런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좀 더 재미있게 구성해 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진짜 이유는 집단지성의 힘을 한번 담아보려고 싶었습니다. 진보 정치라고 하는 게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집단지성의 힘으로 밀고 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라는 게 평소 신념이었거든요.

화순 혹은 나주에 살거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이야기를 추려 담았습니다. 아울러 진보당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깨고 싶었지요. 선거 때만 되면 이합집산하면 정치 모리배들 말고, 느릴지언정 오직 한 길로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진보당의 진정성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책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손잡고 연대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안주용의 대답. 화순과 나주 주민 24명이 묻고 후보가 답하는 형식이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이건 진보도 어쩔 수 없나 싶어 씁쓸했다. 내빈 소개였다. 어느 대선 때였던가, 이런 기사를 보고 한참 웃었다. ‘전국 아파트 입주자 협의회 대표’가 그 후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이곳 내빈 소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트림깨나 한다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굳이 저런 단체도 필요할까 하는 대표 등 지루한 소개는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차라리 지역구 모든 동네 이장이나 통·반장을 소개했더라면 애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고그런 모임 공동상임대표 아무개’라는 명함이라도 하나 갖추어 갈 걸 그랬다.

내빈(來賓)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고 온 사람’이라고 했다. 박수만 받고 얼마 안 가 죄지은 사람처럼 잔뜩 수그리고 삼베 바지 방귀 새듯 떠나 버린 자와 박수 치면서 책을 구입하고 정치 후원금을 내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분 중 누가 진정한 내빈인지 헷갈렸다. 사전적인 정의에 따른다면 나도 내빈인데, 장삼이사(張三李四)까지 챙겨 함께 버스를 타고 가려는 노력이 진보의 가치가 아닐는지.

옆자리에 공감하고 박수 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세 분 어르신이 계셨다. 진정한 내빈이라 여겨졌다. 사진 허락을 받으며, 성함을 여쭈었다. 사회자를 대신하여 대신 소개한다. 이렇게 하면 더 진보답지 않을까.

“공감하고 격려해 주신 내빈 여러분을 소개합니다. 나주에 거주하시는 이재백님, 김영산님, 박한규님 끝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순·나주 진보당 국회의원 예비후보 안주용의 힘찬 도약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