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는 동양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논쟁 중 하나인 장자와 혜자의 ‘호상의 즐거움(濠梁之樂)’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호수 위 다리에서 강물을 내려다본다.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며 장자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말하자, 혜자는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그 즐거움을 아느냐”고 반문한다. 타자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논리적 공공성(公共性)의 문제 제기다.

장자는 물러서지 않고 반격한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찌 아는가.” 혜자가 “나는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모르고, 자네도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쐐기를 박자, 장자는 논점을 근원적 출발지로 되돌린다. “자네가 ‘어찌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이네. 나는 바로 이 다리 위에서, 저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그렇게 느꼈을 뿐이네.”

이 대화는 단순한 궤변이 아니다. 장자가 역설한 것은 인식이란 언제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혜자는 논리와 증명의 자리에서 세계를 분석하고, 장자는 체험과 관계의 자리에서 세계를 포용한다. 같은 대상을 두고 판단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대상의 본질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권은 이 고전적 장면을 비극적인 소모전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정치의 본령(本領)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사회를 하나로 묶는 국민 통합(國民統合)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통합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철저히 분열에 기생한다. 각자의 진영이라는 다리 위에서 상대의 시야를 원천 부정하며, 설득보다는 지지층 결집이라는 손쉬운 정치 공학에만 매달린다.

이러한 모순은 특검 논쟁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투영된다. 이른바 ‘3특검’ 국면에서 특검만이 정의 실현의 유일한 길이라고 외치던 진영은, 특정 종교 관련 특검이 의제화되자 태도를 급변했다. 해당 사안이 제기되었을 때 당 대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단언하며 논의를 차단했다. 이후 여론에 밀려 입장이 모호해졌지만, 그들이 강조했던 특검의 원칙(原則)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반대로 3특검 당시 특검 남발이 국정 마비라며 검찰 수사를 신뢰해야 한다던 진영은, 상황이 바뀌자 정반대의 다리 위로 올라선다. 이제는 “국민적 의혹 해소”를 명분으로 특검을 만능열쇠처럼 주장한다. 시간과 사안에 따라 어제의 공격수가 오늘의 방어자가 되고, 어제의 방어자가 오늘의 공격수로 둔갑하는 기이한 풍경이 반복된다. 보편적 기준은 증발하고 오직 진영의 유불리만 남은 셈이다.

소수 의견 보호라는 취지의 필리버스터 역시 공수(攻守)가 바뀌는 순간 그 의미가 변질된다. 내가 하면 헌법적 권리행사이고 상대가 하면 국정 방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 난무한다. 정치권은 스스로 어느 다리 위에 서 있는지 성찰하기보다, 상대가 서 있는 다리만 무너뜨리려 혈안이 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전문가들조차 이 진영 논리에 포섭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은 진실의 등불이 아니라 진영의 요새를 장식하는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본 세계를 진리라고 믿기 쉽다. 그러나 정치는 그 본능적 한계를 넘어서는 고도의 기술이어야 한다. 국민 통합은 일방의 승리로 쟁취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서 있는 다리에서 잠시 내려와, 건너편 다리의 풍경을 함께 보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용기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정치가 국민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국민을 나누는 데 지나치게 능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공동체 전체를 품을 수 있는 너른 다리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해 좁은 외나무다리 위에서 위태로운 춤을 추고 있는가.

한학자 未能 金塗洙(미능 김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