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계의 최대 화두는 '고교학점제'이다. 과거 정부가 교육 현장과 진지한 소통과 협의를 소홀히 하고 '대학서열 완화를 통한 과열 입시 경쟁 해소'나 '교사 정원의 충분한 확보', '입시제도와의 정합성 향상' 등 선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문발차'식으로 밀어붙여왔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학습자의 '배움'을 중시하므로 매우 이상적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이다. 간단히 말해서,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자신의 진로에 맞게 학습'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고교 교육과정을 '대학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핵심 요소인 '미이수제'는 기준(출석률 2/3 이상 + 학업성취율 40% 이상) 미달 시 ‘이수 불가’로 판정하고, 3년간 누적 192학점 이수 불가 시 졸업을 안 시키겠다는 것이며, ‘최소성취수준보장제(이하 최성보)’는 일정 기준(학업성취율 40% 이상) 달성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미이수제'나 '최성보'는 타협 불가능한 ‘절대적 요소’는 아닐 수 있다. '고교학점제'를 살려 나가기 위해서 ‘학업성취율 40% 이상’ 기준을 완화하거나 삭제할 수도 있고, ‘최성보’의 운영 방식을 ‘유연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성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초학력보장제'라는 명칭 하에 현장에서 실천해 왔다. 그것을 직접 시행해 본 교사는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내 경험으로도, 해당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서 잡으러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왔어도 수업을 거부하거나 마지못해 참여하는 사례가 많았다. '낙인효과'가 해당 학생에게 수치심을 일으켜 '학습 거부 증상'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최성보'는 '미이수'를 방지하기 위해 교사들이 평가 서류 작업을 '마사지'함으로써 '통과의례' 식 잡무만 늘리고 '형식적인 제도'로 전락하지 않을지 심히 우려된다.

필자는 '고교학점제'의 심각한 문제점들은 학생들의 ‘조기 진로 선택 부담’과 ‘소규모 학교들의 구조적 불리함’, '입시제도와의 부정합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학생들의 '조기 진로 선택 부담'과 ‘소규모 학교들의 구조적 불리함’은 ‘교사들의 헌신적인 상담과 지도, 제도적 보완’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입시제도와의 부정합성'은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난제이다.

현행 방침처럼 '고교 교육정상화'를 위해서 '내신'을 대입전형 요소로 반영하기 위해 '학교 간 학력 격차'를 고려하여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학생들은 고교학점제의 본래 취지대로 108학점, 무려 56.25%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자기가 듣고 싶은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데, 입시 경쟁을 위해서는 수능에 유리하거나 등급이 잘 나오는 과목을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화'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고교학점제' 본질 상 타당한 '절대평가'를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교사들은 '점수 부풀리기' 꼼수 개발에 골머리를 썩을 것이고, 대학들은 내신을 전형자료로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암암리에 ‘고교등급제’를 자행하거나 '수능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거나 '대학별고사'의 개발에 몰두할 것이며, 결국 '사교육 광풍'을 불러올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고교학점제'의 근본 취지는 허물어질 것이다.

결국 강고한 '대학(학과)서열체제'로 인한 살벌한 '입시경쟁구조'를 혁파하지 못한 상황 하에서의 '고교학점제'는 우리를 거대한 딜레마에 빠지게 할 뿐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한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등 관계 당국은 외국에서는 잘 작동하는 제도라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이식하려다가 숱한 부작용과 역기능을 일으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고통을 심화시켰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교학점제' 성공을 위한 '선결 조건'들이 충족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보완 조치를 하여 교육 주체들의 혼란과 고통을 줄이고, 우리 교육의 활로를 열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박세철
전 전라남도교육청 청렴시민감사관
전 전남외국어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