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찰] 모래에 갇힌 실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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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찰] 모래에 갇힌 실존을 묻는다
안과 밖이 모호한 뫼비우스 띠 같은 세계
나는 당신을 영원히 비켜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모래의 여자-테시가하라 히로시
  • 입력 : 2024. 02.06(화) 15:14
  • 화순저널
언제부턴가 나는 도처에 도사리는 음험한 기운들을 느끼면서 살았다. 함정이나 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불길하지만, 진실의 권력은 늘 내 편이 아니었다!

도시의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한 사내는 희귀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사막의 마을을 찾는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내는 곤충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자 휴가를 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물은 번번이 모래먼지만 낚을 뿐이다. 날이 저물고 하룻밤 묵어갈 곳을 찾는다.

친절한 얼굴을 한 마을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모래구덩이 속 어느 과부의 집으로 들어가는(내려가는) 사내. 자신의 그물이 실은 저 거대한 그물 속이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사내는 우산을 써야 하는 기이한 저녁 식사를 하고, 모래이불을 덮으면서도 구덩이 바깥의 무구한 여정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모든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에게 하룻밤을 흔쾌히 허락한 집주인 <모래의 여자>도 마을 사람들이 제공해주는 식료품과 일상적인 행색도 당연해 보인다.

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사내는 모래구덩이에서 탈피하지 못한다. 애원과 협박도 소용없다. 탈피를 거부당한 채 모래구덩이의 생활을 견뎌야 하는 사내. 쏟아져 내리는 모래를 퍼내 올리면서 그는 그녀의 무위와 같은 삶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어디 이래서야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잖소!”라며 탈출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래의 여자>를 나무라기도 한다.

모래를 퍼 나르는 일은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자신의 존재 이유는 이런 일이 아니라고 푸념해도 <모래의 여자>는 오로지 모래에만 골몰한다. “왜 이렇게 불편한 모래구덩이에 갇혀 사는 거야?” “왜 멀쩡한 사람까지 데려다 이런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거야?” “힘들면 여기서 탈출하면 되잖아?” <모래의 여자>는 모래 속에서 모래를 퍼내고, 담고, 삼키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남편과 아이의 주검이 모래더미에 묻혀 있다고 그녀는 말했던가. “이제 걷는 데는 지쳤어요”라는 그녀의 말. 사내는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모래가 흘러 내리는 소리 같은 비명을 삼키면서 ​사내는 기어코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비켜 가버린 다음이다. 마침내 모래구덩이의 시간을 빠져나와 허우적거리며 달린다. 감시와 적발의 불빛을 피해 달린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사막은 그의 길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짙은 안개만이 그의 운명을 안내한다. 어둠과 장벽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의지와 달리 결국 모래구덩이로 돌아오는 사내. 모래구덩이에서의 삶이지만 어떤 시도와 실패의 반복과 지리멸렬조차 안녕일지 모른다. 태양을 향한 염원만으로도 삶이 된다는 것. 모래구덩이가 내면화되면서도 폐쇄와 탈주의 기억을 간직한 몸의 배반……. 희귀곤충처럼 채집된 사내는 실종되었고 결국 법적으로 사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안과 밖이 모호한 뫼비우스 띠 같은 세계에서 나는 당신을 영원히 비켜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채어린 - 자유기고가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