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일 동안 붉은 꽃을 피워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 식물 백일홍과 구별하여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도, 줄기를 만지면 간지러운 듯 가지까지 흔들려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원숭이조차도 미끄러지는 나무라 하여 ‘사루스베리(猿滑)’라, 중국에서는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의 ‘파양수(怕癢樹)’라 부른다.

중국 당나라 황제 현종은 양귀비보다 백일홍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집무실인 중서성(中書省)을 자미성(紫微省)이라 불렀는데, 이 자미성에 백일홍을 많이 심어서 그 꽃을 ‘자미화(紫微花)’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손의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는 믿음 때문인지, 예부터 서원, 종택, 정자, 사찰, 무덤 등에 많이 심었다. 선비들도 좋아했다는데, 최고의 풍광은 아마도 담양 명옥헌 원림이 아닐지 싶다. 국내 최고령 배롱나무는 800세로 부산 양정동 동래 정씨 시묘인 화지공원(정묘사)에 있으며 천연기념물이다. 1910년 경술국치에 비분하여 자결한 매천 황현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천 번을 보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요즘은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나무에 이런 전설이 전한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머리 셋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원했다. 어느 해, 연모하는 제물로 바쳐지는 처녀를 연모하는 총각이 제물로 나설 것을 자처했다. 처녀의 옷을 입고 기다리다가 이무기를 베었는데 그만 머리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총각은 나머지 머리를 베어야 한다면서 이무기를 찾아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 “이무기 목을 베어 성공하면 하얀 깃발을,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내걸 것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100일이 되는 날 멀리 배가 나타나는데, 붉은 깃발이었다. 이무기가 죽으면서 내뿜은 피로 붉게 물든 것이었지만 총각이 죽었다고 생각한 처녀는 단정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듬해 처녀가 묻힌 곳에서 곱고 매끈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더니 백 일 동안 붉은 꽃을 쉬지 않고 피웠다.

나무줄기는 매끈하고 껍질이 자주 벗겨진다. 해마다 껍질이 벗겨진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사찰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한다. 세속적 욕망과 번뇌를 배롱나무가 껍질 벗듯 수시로 벗어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경계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산사(山寺) 대부분에는 배롱나무가 있다.
가까이 순천 송광사나 승주 선암사만 하더라도 수백 년 세월 자리를 지킨 배롱나무 고목을 만날 수 있다. 산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 두 그루에는 멋진 전설이 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절친이었던 무학대사가 짚고 다니던 배롱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꽂아두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둘로 나뉘어서 자라났다는 것이다.

한여름 뜨거운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배롱나무로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절집이 화순에도 있다. 만연사(萬淵寺)다. 만연산은 무등산 남쪽에 자리한 봉우리로 국립공원에 속한다. 화순시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나한산(羅漢山)이라 불렸다. 이곳에 천년고찰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 때 만연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무등산의 주봉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다가 만연산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앉은 사이 언뜻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는데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를 하고 있었다. 잠이 깨서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그가 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도 전한다. 나한산의 한 암자에 소녀처럼 예쁜 상좌 중이 있었다. 어느 날 못된 중이 춘정을 이기지 못하고 만연을 숲속으로 유인하여 음행을 했다. 이때 만연의 배 밑에 깔려있던 독사가 만연을 물어 뱀의 독에 의해 만연은 죽고 말았다. 그날 밤 못된 중의 꿈에 만연이 나타나 자신이 나주 목사의 아들로 환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못된 중에게도 앞으로 착한 불자가 되라는 말을 전했다.
꿈에서 깬 못된 중이 이 사실을 주지 스님에게 알리고, 나주 목사를 찾아가 보니 나주 목사와 그의 부인이 만연의 꿈을 똑같이 꾸었다고 한다. 이후 현몽한 상좌의 말대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만연이라 지어 부르고 애지중지 키웠다. 성장한 만연은 열여섯 살이 되자 출가할 것을 결심하고 나주 목사의 허락을 얻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나주 목사는 만연과의 인연에 따라 나한산에 절을 세우고 만연에게 전하여 불도를 닦도록 하였다. 그 후부터 그 절을 만연사라 부르게 되었고 차츰 나한산을 만연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 아래 배롱나무가 먼저 맞이한다. 굵은 줄기와 넓게 펴진 가지가 제법 세월이 쌓였음을 말해준다. 이곳 배롱나무가 특별한 건 연등 때문이다. 대개의 절집은 초파일에만 연등을 내걸지만, 이곳은 삼백육십오일 걸려있다. 진홍빛 연등이 꽃자리인 듯 매달려 만연사의 풍경을 한층 아름답게 한다. 여름에 꽃이 피면 피는 대로 겨울에 잎이 지면 진대로 멋들어진 자태로 눈길을 붙잡는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일 때의 풍광은 과히 환상적이다. 화순에 눈 소식이 들리면 각지에서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 발길로 북적인다. 하얀 세상에서 점점이 붉은 연등을 보노라면 만연의 죽고 다시 태어나 붉은 마음은,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든다.

주변에 둘러볼 만한 것도 많다. 동구리 호수공원, 화순군립최상준미술관, 만연산 오감연결길, 만연산 편백숲길, 만연산 치유의 숲 센터 등. 절에서 동쪽으로 오리쯤에는 만연폭포도 있다. 고요한 숲과 계곡의 물이 좋아 소풍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언제 어느 때나 부담 없이 즐겨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