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찰] 단 한 번의 기억은 추연(惆然)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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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찰] 단 한 번의 기억은 추연(惆然)하다
삶이란 늘 그렇듯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아니던가
영화 - 서편제
  • 입력 : 2023. 09.13(수) 14:43
  • 채어린 자유기고가
너덜너덜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꺼내어 슬그머니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오색창연도 아닌 그것은 차라리 무연한 빛과 같아서 은밀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이미 들통나버린 비애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햇볕을 받았을 때가 오히려 처연해지기도 한다.

나에게 그것은 먼 길이다. 아슴아슴 눈에 밟히면서도 선뜻 가닿을 수 없이 먼 길. 심중에 늘 간직한 스냅사진 한 장의 풍경은 아주아주 오랜 것이지만, 아무리 닳았어도 퇴락하지 않고 굳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햇볕 쪽으로 비추어 보고 싶은 먼 길은 필경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일 터이다.

하지만 퇴락을 한사코 뿌리치고 싶은 마음이 누추해질 때가 있다. 이때의 동행을 회억(回憶)으로만 남기를 바라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하나의 장면만을 간직한다. 비망록의 한쪽처럼 언제까지나 간직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물마저 꽃처럼 빛나는 순간처럼 말이다.


이청준 소설이 원작인 영화 <서편제>의 오프닝은 시골버스에서 한 사내가 내리면서 시작된다. 굽이굽이 먼지 날리는 황톳길을 달려온 것은 사내에게나 나에게 이미 ‘먼 길’인 셈이다. 사내는 전라도의 보성 소릿재 주막으로 찾아든다. 소릿재 주막의 소리꾼은 눈먼 장님이다. 한때 ‘아비’라 불렀던 소리꾼 유봉으로부터 눈을 잃고 소리의 <한>을 물려받은 이복누이인 송화.

그의 얼굴은 벌써 추연에 빠진다. 유봉에게 소리북을 배우지만 어미를 죽인 원수로 여긴 동호는 결국 아비로부터 도주했다. 동호로서는 운명에 저항하는 유일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복수’와 원망은 소리꾼의 삶이 그렇듯 그가 겪었을 냉대와 멸시 그리고 소외와 같았으리라.

삶이란 늘 그렇듯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꼭 놓쳐서는 안 될 그 <무엇>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기적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소리품으로 끼니와 행색을 꾸려가는 일족의 행선지는 늘 먼 길에 놓인다. 유봉과 동호와 송화는 그렇게 허기진 길을 걸었다. 외따로 뻗은 하얀 길. 지친 걸음걸음은 황톳길마다 자맥질한다. 정처 없음은 표표하기만 해서 차라리 처연해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그래야 터져 나오는 노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그렇게 건너가야 할 황량하고 핍진한 길을 향한 저항의 노래. 그들이 뿜어내는 목소리와 춤사위는 초록빛 밭과 들을 건너 푸른 하늘까지 휘달릴 듯했는데…….

눈먼 누이 송화와 나그네처럼 찾아든 동호는 하룻밤을 한바탕 소리의 축제로써 함께 보낸다. 장단을 치는 솜씨로 동호를 알아차린 송화는 서로의 구원도 화해도 나아가 해원(解冤)도 다만 한바탕 소리판의 어울림일 뿐임을 안다. 이는 동호에게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동호는 한밤을 지내고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에두르고 휘몰아치고 다독이는 북장단과 애끓는 절연(絕緣)의 소리였다. 그들의 한바탕 소리판을 두고 남녀 간 교합에 비유하는 건 끝끝내 간직하고픈 마지막 안부와 같았으리니, 그들은 서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애달픈 운우지정의 축제가 아니었겠는가.

굳이 서투른 말로 묻지 않아도, 가슴에 간직한 채 영원히 살아야 할 길은 아름다워야 할 것이어서 다치지 않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작가 이청준도, 영화감독 임권택도 그 오래된 먼 길을 그렇게 오래오래 새겨 두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건너는 길이 그러해야 하듯이. 혹은 저 신비로운 길을 또 누군가 건너오기도 할 것이니 말이다.

감독 : 임권택
주연 : 김명곤, 오정해, 김규철
채어린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