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동복댐이주민협회장, 동복댐 실향민 아픔 그대로 품고 있어

인터뷰
김광진 동복댐이주민협회장, 동복댐 실향민 아픔 그대로 품고 있어
동복댐 이주민 약 1만 명 대표해 10년째 일하고 있어
집안 살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와 산으로 피신했던 1985년
실향민의 땅 360만 평 보상 안 된 채 38년 흘러
망향정 조성 모금운동 1만여 명 참여, 16억 6천만 원 모금
김영삼 대통령 특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51억 원 자금 지원받아 망향동산 조성
실향민의 치유와 보상, 진정한 화해 이뤄질 때 화순적벽·동복호 더욱 푸르게 빛나
  • 입력 : 2023. 08.28(월) 18:07
  • 권영웅·김지유
김광진 동복댐이주민협회장.
1960년부터1980년대 건립된 동복댐 인해 1만여 명의 실향민들이 수장된 정든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2013년부터 이들과 함께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동복댐과 관련된 여러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광진 동복댐이주민협회장을 화순저널 인터뷰석에 초대했다. 김광진 회장을 통해 동복댐의 아픈 역사와 지금까지 이어지는 실향민의 고통, 동복댐을 둘러싼 미해결 과제 등을 듣고 정리했다.<편집자 주>

▲ 동복댐 이주민 약 1만 명 대표해 10년 째 일하고 있어

동복댐이주민협회 일은 2013년부터 맡아서 해오고 있습니다. 해관 장두석 초대회장님께서 암 투병을 하시다가 2015년 3월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1년 정도 인수인계 과정을 거쳐 2014년 가을에 정식으로 회장에 취임해서 지금까지 거의 10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민기 고문도 많이 고생했습니다.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이서면 외 4개 마을에서 1969년, 1970년에 184가구 1,200명 정도 이주했고, 1984년에 백아면의 와천과 사천에서 200가구 1,000여 명 정도가 이주했습니다. 자료를 보면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약 3,700명 정도 이주했습니다. 전체적으로 1969년부터 1985년까지 이서면과 백아면에서 총 789가구 5,789명이 이주했습니다.

당시 먹고 살기 위해서 서울에 주소를 둔 사람들이 많았고, 삶이 힘들어서 서울과 부산 등으로 먹고 살기 위해 나가셨던 분들까지 합하면 15개 마을에 약 1만 명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이서면 인구가 1000명 정도지만 1972년 당시 인구는 9026명이었습니다.
1985년 5월 8일 동복댐이 갑작스럽게 담수되어 난민이 된 이주민 모습. 출처-그리운 고향 적벽.

▲ 1985년 5월 폭우, 수문 없어 마을 그대로 잠겨
- 집안 살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와 산으로 피신

저희 집은 1970년 1차 때 서울로 이주했고, 저는 이서에서 초등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서울로 올라간 후 서울에서 초, 중, 고, 대학을 다 마쳤습니다. 이후 2013년에 벌초를 하러 이서에 내려와 동복댐을 찾았습니다. 당시 12인승 환경선 배에 150명을 실어 날랐습니다.

그때 배에 탔던 사람들이 1985년 5월 6일, 7일, 8일 상황을 얘기해줬습니다. 동복댐은 원래 1985년 12월 31일 완공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 물이 워낙 급하게 필요하니까 1985년 5월에 공사가 끝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해 5월 6일부터 8일까지 287mm의 비가 내렸습니다.

공사는 마쳤지만 수문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 담수가 돼버린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설마설마하다가 새벽이 되니까 소와 염소가 떠내려가고 세간살이가 다 떠내려가니까 장난이 아니고 실전이구나 하면서 집안 살림을 그대로 놓고 몸만 빠져나와 산으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1985년 5월 8일 경 갑작스러운 동복댐 월류로 잠긴 집의 모습. 출처-그리운 고향 적벽.

▲ 360만 평 보상 안 된 채 38년 흘러

그러다 보니까 보상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왔습니다. 댐 주변의 360만 평의 밭과 임야는 보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고, 그나마 1985년에 이미 집과 물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논밭은 어느 정도 보상이 됐습니다. 나머지는 협상을 통해 보상돼야 하는데 전혀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광주시가 공식 확인해 준, 물속에 있는 논밭 255필지 2만 500평도 보상이 안 돼 있고, 주변에 밭과 물속에 드러난 밭이라든지 산 등 360만 평도 보상이 안 돼 있습니다. 적벽 들어가는 데와 제2 전망대도 지금은 산천으로 보이지만 그때는 밭이었는데, 그것도 보상이 안 돼 있는 상황입니다.

▲ 적벽 지키고자 저항했던 주민 투옥시켰던 무법천지 시절

동복댐은 정말 아픈 역사를 가진 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적벽을 지키자고 저항했던 사람들을 잡아다가 한 40여 일을 투옥시켰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많이 납치해 여수나 목포에 놔두고 오는 등 무법천지였습니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마을과 적벽을 지키려다 투옥된 사람이 약 200명이었습니다.

그 당시 먹물이 든 사람들은 청원 경찰 한두 명씩 채용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장 등을 회유해 물을 막아 놓았는데 3일간 300mm 정도 비가 내리니까 마을 전체가 자연 침수돼버린 것입니다.
김광진 동복댐이주민협회장이 화순적벽 인근 산에서 대밭을 정리하는 등 정비에 나서고 있다.

▲ 고스란히 수장됐던 마을 몇 달 후 폭파작업

작년처럼 가물었을 때, 1985년 댐 속에 잠겨있던 마을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수장되고 몇달 후 폭발물로 마을의 시설물을 폭파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그런 잔해들이 동복댐 하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망향정 조성 모금운동 1만여 명 참여, 16억 6천만 원 모금
- 김영삼 대통령 특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51억 원 자금 지원받아 망향동산 조성

1995년 장두석 초대회장님을 중심으로 적벽에 뭔가 남기자 해서 1996년 길을 냈습니다. 길을 낸 김에 이왕이면 망향정을 조성하자 해서 전국적으로 모금운동을 했는데 1만 명이 참여했고, 모금한 돈은 13억 원 정도였습니다. 광주시에서 3억 6,000만 원을 지원해줘서 16억 6천만 원으로 망향정을 조성을 시작했지만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망향정 조성 등을 광주시도 반대했고 전라남도, 화순군도 반대했습니다. 상수원보호구역에 그 많은 시설들을 했으니 오죽 반대했겠습니까. 그때 김광일 비서실장이 김영삼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세 번이나 내려와 반대를 다 무마시켰고,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때 51억 원의 자금이 내려와 현재의 망향동산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 광주시 공식적으로 인정한 미보상 토지 2만 500평분 보상해주길

적벽 입구부터 적벽 전체가 40만 평인데, 이 중 37만 평이 실향민들의 땅이고 광주광역시가 대밭 쪽으로 3만 평 정도, 화순군은 길 전체 만 평 중 3분의 2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2015년에 일부인 약 60% 정도 보상이 됐습니다.

전체 360만 평 중 길을 광주시가 거의 다 냈기 때문에 저희 실향민들은 물 밖으로 드러난 360만 평의 토지나 적벽에 대해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해결하고 싶은 것은 광주시가 공식적으로 보상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물속에 들어간 땅 255필지 2만 500평만 보상해주길 바랍니다.

▲ 화해와 치유 위한 ‘동복댐실향민쉼터’ 운영 광주시가 지원해주길

다음으로 상수원보호지역에만 철조망이 쳐져 있으면 좋은데, 철조망을 치면 안 되는 수변구역까지 철조망이 있습니다. 사유지까지 쳐놓은 철조망 때문에 선산에 벌초를 하러 들어갈 수도 없어 답답합니다.

현재 광주광역시와 화해 및 치유를 위한 동복댐실향민쉼터를 10억 원 정도 들여 지어놨는데, 올 가을 준공돼 2024년 1월 1일부터 운영됩니다.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광주시가 지원해주기 바랍니다.
1M 높이 밖에 안 되는 동복댐 4개 수문.

▲ 수문 없는 동복댐 또다시 주민 목숨 위협
- 하루빨리 수문 설치돼야

수문이 없는 동복댐은 2020년 8월 다시 한 번 동복면과 사평면 주민의 목숨을 위협했습니다. 다행히 댐이 붕괴되지 않았지만 월류로 인해 201가구 총 46억여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곧바로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지역 주민들과 전남댐연합회는 3년간의 끈질긴 노력으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피해보상을 신청을 하게 됐고 올해 7월 손해감정평가액이 결정됐습니다. 결과가 나온 만큼 이제는 빠른 보상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또한 하루빨리 동복댐에 수문이 설치될 수 있도록 광주시와 화순군에서 힘써주길 바랍니다. 저희 동복댐이주민협회와 전남댐연합회에서도 최선을 다해 수문이 설치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0년 8월 동복댐 월류로 동복댐 하류가 침수돼 파괴된 비닐하우스와 농경지

▲ 화순군 제1명승지 화순적벽

동복천은 전라남도 명승 제112호인 적벽을 휘감고 흘러 적벽강이라고도 불립니다. 동복천 상류에는 여전히 수려한 절벽 경관이 발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화순적벽[노루목 적벽], 보산리 적벽, 창랑리 적벽, 물염 적벽 등 4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화순적벽과 보산리 적벽은 동복댐 보호 구역으로 접근이 쉽지 않았으나 1996년 임도 개설로 한결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곳에는 망미정, 보안사지 석탑, 망향정 등이 있습니다. 물염적벽에는 홍주 송 씨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물염정과 김삿갓 시비가 있으며, 물염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 대청 모양의 1층 팔작지붕 건물이며, 위락 공간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화순적벽은 일부가 수몰되었지만 동복호와 적벽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웅장함이 어우러져 화순군의 제1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실향민의 치유와 보상, 진정한 화해 이뤄질 때 화순적벽·동복호 더욱 푸르게 빛나

동복댐실향민의 상처와 아픔이 제대로 치유될 수 있도록 광주시와 화순군에서 더욱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실향민에 대한 치유와 보상이 제대로 이뤄졌을 때 진정한 화해도 가능할 것이며, 화순적벽과 동복호는 더욱 푸르게 빛날 것입니다.
동복호 모습. 출처-화순군
권영웅·김지유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