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찰] 야생으로부터의 공감과 위로

희망과 행복은 상처와 슬픔을 견디는 일
와일드-장 마크 발레, 2014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2023년 04월 16일(일) 04:52
나는 가끔 불행하고, 가끔은 행복하다. 어떤 게 맞는지 모른다. 정답이 없어서 늘 헷갈린다. 그런 갈등을 겪은 다음의 나의 행동은 특별해진다. 좋은 영화를 보거나, 낚시를 간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건 가까운 산을 오르는 일. 평평하거나 가파른 산길은 늘 새로워서 나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지향이 없어도, 혹은 그럴듯한 동기가 없어도 산은 나아가는 일이면서 경사를 오르는 순간들의 경이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불우와 가난으로 점철된 세상일지라도 나는 산을 내려가야 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산 아래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희망과 행복은 상처와 슬픔을 견디는 일. 진부한 충고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가끔씩 나는 세속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매일, 매 순간 엄습해오는 인연과 악연의 수레바퀴는 도피이자 미궁의 여행을 충동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한세상 살면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꽃처럼 아름답고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용기를 내어 아침을 맞고 태양을 향해 전진해도 날은 쉽사리 저물고 어두워진다.

영화 「와일드」는 인간의 태생적인 상실과 결핍으로부터 시작한다. 나와 많이 닮았다. 혹은 그 누군가와도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의 자서전인 『와일드』를 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로 제작했고 자신이 직접 연기했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을 잇는 4,285km의 도보여행 코스. 거친 등산로와 눈 덮인 고산 지대, 아홉 개의 산맥과 사막,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거치고서야 완주할 수 있는, 평균 152일이 걸린다는 극한의 도보여행 코스를 셰릴은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악마의 코스'라 불리는 변화무쌍한 극한의 여정이다.

절대 고독의 공간이다. 육체적인 피로와 외로움과도 싸워야 한다.
“어쩌다 이런 쓰레기가 됐는지 몰라.” 셰릴은 엄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밑바닥까지 추락시킨다. 마약에 중독되고 남편과 이혼한 그녀는 원하지 않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고통과 슬픔 속에 방황하던 그녀는 끔찍하게 변해버린 자신을 깨닫고서 새로운 모색으로 여행을 결심한 것이다. 모하비 사막과 투올럼니 초원, 후드산과 레이니어산의 화산지대, 크레이터 호수의 숲, 그리고 오리건에서 워싱턴주, 컬럼비아강을 지나는 신들의 다리…….
셰릴을 연기한 리즈 위더스푼은 말한다. “사람들의 손이 가지 않은 야생의 공간이 왜 그토록 셰릴 스트레이드를 강렬하게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모든 게 정말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도 그걸 느꼈을 거로 생각한다.”

영화 「와일드」는 우리 모두의 인생과 같아서 누구에게나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새삼스럽지만, 엄마를 향한 큰 사랑은 가슴 깊은 울림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비켜 가버린 인연들 또한 ‘애증의 그림자’이면서 너무나도 생생한, 손에 잡힐 듯한 감정이다. 늘 그렇듯 영화는 명백한 길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아득한 곳에서 만나는 눈길만이 촉촉하게 젖어서 세상을 물들인다.

채어린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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