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초대석>화순이 낳은 정혜숙 시인, 한국문단 대작가 반열에 올라 국내 최고 권위 중앙시조대상 수상 영예 김지유 기자 hsjn2004@naver.com |
| 2023년 01월 18일(수) 06:12 |
 정혜숙 시조시인, 지난해 12월 16일 제41회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한 화순 출신 작가 |
▲ 중앙시조대상, 누구나 꿈꿈는 영광스러운 상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는 정혜숙 작가 |
▲ 문학인 <정혜숙 생가> 써 붙이고 싶다는 꿈을 꾸다
어릴 적 공무원인 아버지께서 공무로 바쁘시니 어머니를 도와 밭일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꼭 문학으로 성공해서 우리집 사립문에 <정혜숙 생가>를 써 붙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화순 춘양이 고향인데 그 당시에는 시골이라 읽을거리가 궁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놓인 신문쪼가리나 ‘소년 007’ 만화 등 활자가 적힌 종이는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읽곤 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친구들과 왁자지껄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있거나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늦깎이 문학도, 시조 시인으로 첫 발 내딛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형편상 곧바로 취업을 했다. 그리고 결혼까지 현실에 먼저 충실해야 할 처지였지만, 문학인으로의 삶을 꿈꾸며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40대에 접어드는 나이에 늦깎이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학교 문학동아리 활동 등을 하면서 자유시를 썼다. 그런데 시조를 쓰시는 교수님이 제 작품을 보고는 시의 걸음걸이가 시조와 많이 닮았며 시보다는 시조를 써보길 권하셨다. 아마도 내 안에는 나도 모르게 시조의 걸음걸이가 자리잡고 있던 것 같다.
▲ 나는 천생 시조 시인
아직도 자유시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고 한다. 그럼에도 정형시인 시조가 훨씬 매력적이다. 내가 말이 없는 편이어서인지 말이 많은 시보다는 단정함 속에서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시조가 좋다. 언어를 잘라내고 다듬어서 틀에 맞추는 과정이 참 좋은 걸 보면, ‘나는 천생 시조 시인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 대상 수상작, ‘릉의 후원을 걸었다’
유난히 자연을 좋아한다. 나무, 숲, 새, 야생초...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던 어느 가을, 김해에 있는 김수로왕릉을 잠시 다녀온 적이 있다. 후원에 있는 능이 유독 둥글과 완만하게 눈에 들어왔다. 파릇파릇 잔디들이 자란 그곳에서 느낀 세월의 깊이와 망한 왕조의 쓸쓸함, 고즈넉함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시조의 시간적 깊이를 순식간에 확장하는 종장은 오랜 고민 끝에 써 내려간 것이다.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차마 다 담을 수 없어서 그렇게 마무리했다.
▲ 눈을 뜨나 감으나 오로지 좋은 작품 쓰기에 매진
20여년간 내 작품을 완성하고 날 때마다 항상 내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회의감이 들어 비틀거렸다. 그러나 이제 중앙시조대상 수상을 하게 됐으니 눈을 뜨나 감으나 오로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매진할 것이다.
여전히 작품을 쓸 때마다 난산이다. 대상 수상이 더욱 바윗덩이가 돼 가슴에 얹힌 듯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내 작품들이 각박하고 건조한 세상살이를 해나가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건드려 위로가 되고 힘이 돼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대상 수상작>
릉의 후원을 걸었다 –정혜숙
무의탁 구름 사이로 밀랍 같은 낮달이다
방금 닿은 전언처럼 가지 끝 붉은 열매
나무의 쓸쓸한 화법
그 너머를 더듬는다
흰피톨의 햇살이 가락국에 내리고
시간이 겹겹 쌓인 릉의 후원은 고요했다
바람이 다정했으며
새들의 악보 산뜻했다
아주 멀리 다녀왔으나 글을 이룰 수 없으니
여백으로 남겨둔다, 잠시 펜을 놓는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천 년이 또 흘러간다
■ 정혜숙
2003년 중앙신인문학상 등단. 시집 『앵남리 삽화』, 『흰 그늘 아래』, 『거긴 여기서 멀다』 외. 시조시학 젊은시인상(2008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2012년), 무등시조문학상(2020년) 수상 외.
 중앙시조대상 수상 후 중앙시조신인상 박화남 시인, 중앙신춘시조상 김현장 작가 등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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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유 기자 hsjn2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