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사람들 칼럼>뚜벅이 리포트_완전 소중한 간이역 편 정청라 귀농작가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2025년 07월 17일(목) 17:12

내가 사는 면에는 기차역이 있다. 1930년 12월부터 열차 운행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100년 가까이 살아낸 유서 깊은 역이다. 하지만 작은 면 단위 역사 대부분의 운명이 그렇듯이 2003년부터는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간이역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다. 기차표를 끊어주거나 열차 이용 안내를 해주는 역무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간이역은 무표정하고 적막하다.

그렇다 해도 나에겐 간이역이 완전 소중한 장소다. 시골 오지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가까이에 기차역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하루 한 번만 운행하는 열차지만 부전행 열차가 있어 경상도에 사는 지인들의 집에 놀러갈 수 있고, 보성이나 순천에 볼 일이 생긴다 해도 기차를 이용하면 훨씬 가깝게 닿으니 부담 없이 약속을 잡을 수 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되면 화순읍이나 광주 터미널까지 나가서 움직여야 하니 동선이 꼬이고 이동 시간도 배가 된다. 승차감과 분위기의 차이야 말할 것도 없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용산역까지 가는 직통 열차도 있었는데, 그게 없어진 건 실로 유감이다.)

열차 운행을 통한 사업 수익성을 따지는 편에서는 간이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미미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간이역 이용자로서 여전히 끊이지 않는 손님들을 본다. 주기적으로 보성에 나갈 일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열차를 타러 가는데,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열차 안은 절반 이상의 자리가 메워져 있다. 역전 안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두세 명 정도는 꼭 있다. 신기하게도 역에 갈 때마다 자주 마주치는 분도 있어서 언제부터인가는 서로 알은체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비밀로 부치고 싶은 이야기인데, 때때로 열차 기다리는 시간을 느긋하게 잡고 나가 역사 안에서 리코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역사 안은 음향 설비가 완벽한 무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노래 한 곡조라도 불러보시라. 울림이 다르다. ‘학교종이 땡땡땡’ 같은 단순한 곡조를 불러도 기가 막힌 연주곡으로 둔갑해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역사 안에 다른 손님이 있을 때도 리코더 불기를 멈추지 못할 때가 있다. 무안하게도 그러다가 두어 번 정도는 박수갈채와 감사인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름에는 열차 기다리는 동안의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역사 안이 생지옥이 되기 때문이다. 역무원이 없다고 해서 역사 이용자가 없는 것은 아닌데, 폭염의 날씨 속에도 이용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역사 안에 선풍기 하나도 없을 뿐더러 창문도 없고, 대부분의 출입문을 고정문으로 잠가 놓아 열 수 있는 문도 앞뒤 하나씩뿐이다. 그마저도 열린 채로 고정을 시킬 수가 없으니 역사 안은 혼탁한 더운 공기로 꽉 차있다. 앞뒤 문을 활짝 열어 맞바람만 통하게 해도 훨씬 시원할 텐데 말이다.

할 수 없이 나를 비롯한 간이역 이용자들은 역사 밖에 나가 화단 옆 작은 그늘에 의지해서 열차를 기다리는 형편이다. 그늘에 쪼그려 앉은 채 잊혀지고 무시되고 쪼그라든 간이역을 생각한다.

정청라
이양면의 귀농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