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가족센터에 핀 모성애의 꽃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2024년 11월 22일(금) 22:31

하늘은 높고 목화솜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다. 지지리도 덥던 긴 여름은 어느덧 지나가고 단풍이 울긋불긋해진다. 은행나무 이파리도 노랗게 물들어 가는 완연한 가을이다. 바람도 많이 쌀쌀해지고,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해서 감기에 걸린 분들이 꽤 많다.

나는 올해 2월 26일부터 화순군지역일자리로 화순군가족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중국의 결혼이민자 두 명,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결혼이민자 1명, 필리핀의 결혼이민자 1명, 베트남의 결혼이민자 3명, 라오스의 결혼이민자 1명, 총 8명이 4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함께 일했다.

우즈베키스탄의 결혼이민자 동료는 실로 뜨개질을 너무 잘했는데, 주방용 수세미며 가방이며 옷을 짠 것이 예술품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수세미를 짜서 판매한 금액 전액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일하러 온 젊은 부부의 암에 걸린 둘째 딸애의 간식비로 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자녀가 셋이나 되고 생활 형편도 넉넉지 못한 동료가 좋은 일을 하는 것에 감격해 2,000원짜리 수세미 50개를 주문해서 우리 교회의 25명 교인들에게 선물했다. 교회에서 선물을 받은 분 중의 한 여자 집사님이 내 가방에 슬그머니 만원을 넣고 갔다.

동료가 화순전남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인 여자애를 만나러 병원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3월 중순의 화창한 주일에 고려인 동료와 함께 병원에 문병을 갔다. 동료는 여자애가 좋아하는 빵을 사고, 나는 병원의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박스를 사서 병실에 올라갔다. 뇌수술을 받고 상처를 치료받은 여자애가 울다가 혼곤히 잠들어 있었다.

여자애의 젊은 엄마가 병상을 지키고 있었는데, 한국어를 잘 몰랐다. 어린 딸애가 뇌암에 걸려서 여러 번 수술 받았다는 것을 이미 듣고 온지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옆에 있는 휴게실에 나와서 힘내라고 어린애 엄마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는 찾아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는 어린애의 엄마에게 위로의 말 몇 마디를 하고는 집으로 왔다.

집에 온 뒤에도 동료를 통해서 들은 말이 귓가에서 쟁쟁했다. 어린애 아버지가 혼자 일을 해서 두 딸애와 식구 4명이 생활하는데 요새 일을 하다 어린애 아빠가 갈비뼈에 금이 나서 일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남편과 딸애가 29년 동안 한 번도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 애 간식비를 보태주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나는 전국글쓰기대회에서 여러 번 큰 상을 타고 화순문인협회의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수필작가의 명함을 판 상태라 더 좋은 글을 쓰려고 야학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있는 터라 돈을 조금만 벌고 있기에 나에게는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새벽기도를 가려고 일어났는데 불쑥 몇 년 전에 샀던 아끼던 실반지 두 개를 팔아서 어린애의 간식비로 줘야겠다는 결단을 했다. 그날 보석 가게에 가서 사려고 하면 50만 원을 줘야 하는 실반지 두 개를 총 21만 6천을 받고 팔았다. 부산에 사는 동서와 통화 중에 우연히 그 얘기를 했더니 동서가 간식비로 보태라고 내 계좌에 10만 원을 보내왔다.

나는 동서와 교회의 집사님이 보내준 32만 6천 원을 뇌암에 걸린 여자애한테 전달하기 위해, 퇴원하는 그 애의 부모님이 가족센터에 들렀다 갈 수 있도록 전달해 달라고 동료에게 부탁했다. 근무 시간이라 그 애를 직접 보러 갈 수 없었다.

오후에 어린애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린애가 함께 온다는 소리를 듣고 1층으로 마중을 내려갔다. 여자애가 힘겹게 올라오기에 손을 잡고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돈 봉투를 어린애한테 쥐여주자 옆에 있던 자녀가 다섯 명이 있는 베트남의 결혼이민자가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여자애에게 주었다. 그러자 다른 다섯 명도 만 원씩 그 애 손에 쥐어 줬다. 그날 현금을 안 갖고 온 동료는 다른 동료에게 빌려서 줬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찡했다. 이들 모두가 엄마로서 아픈 어린애한테 연민의 감정이 생긴 것이다. 젊은 부모님도 감동받아 너무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한참 있다가 퇴원하는 애와 부모님을 밖으로 바래다 주고 방 안으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눈물이 앞을 가려서 흐느꼈다. 우리 8명은 다 엄마로서 어린애가 뇌수술을 여러 번 하면서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졌다. 젊은 부모가 아픈 딸애를 간호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방 안이 눈물바다가 된 것이다.

그날 우리가 준 간식비는 비록 38만 6천 원이지만, 그 애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 애 부모에게 힘내라고 응원하는 마음은 가격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특히 넉넉지 못 한 동료들과 동서, 우리 교회의 집사님이 남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이다.

나는 우리 모두의 자녀들이 다 건강하게 잘 살면서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받기를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드린다.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서 팍팍하게 느껴지는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마음이 예쁜 사람들이 많다. 이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꿔 나가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은 다문화가정의 수가 갈수록 많아져 이미 다문화 시대에 진입했다. 어떤 지자체의 단체장들이나 기존에 한국에서 살던 분들이 결혼이민자들에게 큰 상처를 줬고, 그들이 아직도 아픈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가슴이 아파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29년 전 한국에 온 결혼이민자로서, 그들의 그늘에 햇볕이 들어오게 도와주고 싶다.

동남아의 결혼이민자가 무시를 받고 울면서 토로하던 말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심장이 뛰고 있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나 역시 한국에 막 시집왔을 때 아무 잘못도 없이 단지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해서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을 경험한지라 그들의 마음에 공감한다. 결혼이민자들이 살아온 나라의 국민성도 있고 각자 자라온 환경이 다름으로 처음 그들과 같이 일을 했을 때에 나 자신도 그들이 한심하고 갑갑하다고 느꼈던 적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많이 뉘우친다.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변화를 바라면서 인내하기로 다짐한다. 거북이인 그들을 인정하고 갑자기 토끼가 되라고 닦달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여자로서 그들과 공감하면서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계속 이끌어주고 싶다.

나는 우리 화순에서 사는 600명이 넘는 이민자들, 그리고 2,000명이 넘는 다문화가족의 식구들이 화순에서 차별 없이 잘 살 그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옥화
화순문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