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기 전 부면장,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화순적벽’, 끈기와 애정으로 지켜내

실향민들의 애달픔, 고향과 적벽 바라볼 수 있는 쉼터 만들고 싶었다
지형, 인적사항 등 데이터베이스 없었던 과거, 하나하나 발로 뛰었다
정완기 전 도의원, 김석중 씨, 정영식 부시장, 장두석 선생 등 감사한 분들 셀 수 없어
적벽 관광,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관광 정책 내놔야

글 : 정채하 · 사진 : 김지유 hsjn2004@naver.com
2024년 10월 04일(금) 11:36
이민기 전 이서면 부면장이 화순적벽의 망향정 및 임도를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숨은 공로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약 40여 년 동안 화순에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적벽으로 통하는 임도를 내고, 망향정을 세우는 등 화순적벽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이민기 전 이서면 부면장. 화순적벽이 오늘날 화순군을 대표하는 관광지 8경 중 제1경으로 우뚝 자리 잡게 된 현재, 금단의 불모지 같았던 화순적벽에 망향정을 세우고 적벽으로 들어가는 임도를 조성하기 위해 최초로 앞장섰던 이민기 전 부면장에게 그 과정과 숨은 공을 세웠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편집자 주>


▲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화순적벽’, 끈기와 애정으로 지켜내


지금이야 화순적벽이 명실상부 화순의 대표 관광지로 거듭났지만, 한때 화순적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동복댐이 준공되면서 적벽이 있던 마을이 수몰된 이후, 광주광역시의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적벽’이 완전히 물에 잠겨 없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물에 잠겼고 출입조차 어렵다고 하니, 이서면은 물론 화순군에서도 적벽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만약 제가 관심과 애정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적벽으로 향하는 임도와 망향정의 건립을 끈기 있게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화순적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실향민들의 애달픔, 고향과 적벽 바라볼 수 있는 쉼터 만들고 싶었다


실향민들의 애달픔을 직접 목격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망향정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서면재경향우회, 실향민들이 이서에 관광 차 방문했었는데, 고향에 발을 딛지 못하고 도로변에 선 채 바라만 보며 애달파 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이 많아져 날밤을 지새울 정도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이서 출신이고, 동복댐 건설로 인해 집과 땅을 잃은 수몰민으로서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눈앞에 고향이 있는데도 갈 수 없다는 그 애달픔을 풀어주고, 실향민들이 고향을 찾아왔을 때 적벽을 바라보며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민기 전 부면장이 소장하고 있는 당시의 기록들. 직접 산의 토지주들을 찾아다니며 지적도 위에 길을 그렸다.
▲ 지형, 인적사항 등 데이터베이스 없었던 과거, 하나하나 발로 뛰었다


동복댐은 광주광역시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화순군은 적벽을 살릴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망향정을 건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건립을 위해서는 적벽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서면 부면장이 됨과 동시에 적벽으로 통하는 임도 개설을 추진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주소지와 지형, 거주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잘 꾸려져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며 지형 정보를 파악했습니다. 지적도를 복사해 산길을 하나하나 그리기도 했고, 1,100여 명에 달하는 실향민들을 찾아 망향정 건립을 건의하기 위한 서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임도를 내기 위해 토지 주인들을 한 분 한 분 설득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토지주들이 반대해 세 번이나 무산되기도 했지만, 임야 승낙서를 받고 임도를 개설할 수 있었습니다. 실향민들의 아픔을 풀어주고 싶다는 바람이 강했고, 이를 위해 희생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웃지 못할 우여곡절, 끝내 임도와 망향정 세워


서명을 추진하고, 지형을 파악하고, 토지주들을 설득하는 등의 노력 끝에 1995년에 망향정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행정적으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독으로 집행했습니다. 여러 실향민, 추진위원회의 임원분들께서 힘을 모아 준 덕분에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고, 1996년 7월, 마침내 적벽으로 진입하는 임도의 기공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임도를 내는 도중에도 여러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많았습니다. 망향탑을 건립할 곳에 이름 없는 묘를 쓴 사람도 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 무덤을 찾아온 가족을 만났고, 묘를 옮겨 달라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임도를 낼 때는 포크레인 기사를 설득해 교차로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전화기도 없고, 삐삐로 소통해야 하니 알음알음 찾아다니며 직접 만나 설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한 명 한 명 통화하며 설득하는 과정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 '일은 안 하고 전화기만 붙들고 있다.'라며 동향보고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망향정 건립을 추진하면서, 주암댐으로 수몰된 순천시 도월마을의 망향정을 벤치마킹해 보라는 정완기 전 도의원님의 안내를 받아 그 순천시 송광면사무소 관계자에게 어렵게 자료를 제공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3월에는 드디어 망향정을 기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망향정이 있어 오늘날까지도 적벽이 잊혀지지 않고 화순군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민기 전 부면장이 감사한 이들의 이름을 전하며 문서나 기록에 언급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 정완기 전 도의원, 김석중 씨, 정영식 부시장, 장두석 선생 등 감사한 분들 셀 수 없어


감사한 분들을 꼽으라면 셀 수 없이 많지만, 이서면과 화순군에서조차 무관심할 때 귀 기울여 주셨던 정완기 전 도의원님, 임도 개설을 위해 3천여 평에 달하는 김 氏 문중의 산을 선뜻 양보했던 김석중 씨, 관계자들을 모아 신속하게 논의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던 정영식 전 광주광역시 부시장님, 나중에 합류하셔서 망향정 준공까지 애써주신 장두석 선생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최초로 추진했던 저를 비롯해, 망향정 건립을 위해 애써왔던 진짜 공로자들의 이름은 문서나 기록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앞으로 화순군의 문화적 발전을 위해 귀중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적벽 관광,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관광 정책 내놔야


2022년 6월 30일, 그렇게 바라던 동복댐 관리권이 화순군으로 일부 이양됐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지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 모든 일의 시초에 제가 있었고 일조했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앞으로 화순적벽이 관광지로서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관광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동복호 둘레에 레일을 깔아, 레일바이크를 타고 앉아 동복호를 한 바퀴를 돌며 구경할 수 있게 만들거나, 번지점프대를 설치하는 등 이색적인 관광 아이템을 발굴했으면 합니다. 화순적벽은 특히나 경관이 빼어나니, 이런 경관을 잘 활용하여 타 지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관광상품을 개발해 더 많은 관광객들이 화순적벽을 찾기를 바랍니다.
이민기 전 부면장이 소장하고 있는 당시의 기록들.
글 : 정채하 · 사진 : 김지유 hsjn2004@naver.com
이 기사는 화순저널 홈페이지(http://www.hsjn.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hsjn2004@naver.com